마태복음
2011.04.10 17:05

(133강) 권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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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23-27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212327.mp4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설교>

◉ 왜곡된 권위 ◉

 

본문의 내용은 권위의 대한 충돌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힐문합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일’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과 환전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신 일과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면서 혹시 예수님이 자신들이 모르는 권위를 가진 분이 아닌지 의문을 가지고 질문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성전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진 권한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성전에서의 일만큼은 대제사장의 허락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장로 또한 백성들의 어른입니다.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하며 가르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이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해당되었습니다.

 

 

성전에서의 사건은 제물을 사고파는 일과 환전하는 것을 허락한 대제사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에 해당됩니다. 대제사장이 허락한 일을 감히 예수님이 뒤 엎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 또한 제사장과 장로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아이들의 찬송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또한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처럼 구약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스스로를 메시아로 여기는 신적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께 성전에서의 활동을 허락한 적도 없고,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별 볼일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권위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한 것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묻는 것은 그런 권위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인데 자신들은 예수님에게 성전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권위를 허락한 적이 없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힐문하는 그들의 말을 보면 그들은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과 권위의 충돌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장로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이나 장로라는 지위는 물론이고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여길 정도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그들의 권위를 인정했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위를 힘으로 수단화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제사장인 나와 제사장이 아닌 너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제사장으로서 권위가 있지만 너는 제사장이 아니기에 나와 같은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그들의 왜곡된 생각이었고, 오늘날에도 권위를 잘못 이해하는 이런 생각으로 인해서 교회 안에서 수많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교회가 진리와 상관이 없는 왜곡된 길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유대사회에서 대제사장이라는 지위는 제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습니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자신의 몸에 제물의 피를 바르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로 살아감을 백성들에게 나타내고 증거해야 하는 것이 대제사장이라는 지위입니다.

 

 

제사장들이 기업이 없이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로 생활을 하는 것도 제사장이라는 역할과 연관이 있는 것이지 제사장이라는 지위가 백성들보다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권위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백성들 위에 있게 됩니다. 즉 권위를 힘으로 여긴 것입니다. ‘나는 제사장으로써 권위가 있으니까 내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이것이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입니다.

 

 

현대 교회에 있어서 이처럼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목사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목사의 권위는 설교를 통해서 복음을 복음답게 증거하는 것이지 목사라는 지위 자체가 권위가 있고 그래서 목사가 권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라는 지위를 권위로 여길 때 목사는 자신을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권위를 힘으로 여기고 교회에서 힘 있는 자로서 교인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왜곡된 모습입니다.

 

 

◉ 힘과 권력이 아닌 권위 ◉

 

 

권위의 문제를 들고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답을 하면 예수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고 답합니다. 알지 못한다고 한 이유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라고 하면 그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어찌하여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는 책망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당시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던 백성들의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지 못한다고 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요한의 세례 문제를 끄집어내신 것일까요? 권위에 대해 물었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서의 권위다’라고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다’라고 하셨다면 그것은 힘에 대해 힘으로 대항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대제사장이라는 권위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난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권위로 대항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차이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위의 권위를 힘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 메시아로서의 권위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해해야 할 권위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모른다고 말한 것은 자신들이 난처해 질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제사장이나 장로의 위치에 있었지만 오직 자기들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삼고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라는 지위는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으로 살도록 돕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이해하는 권위는 힘이었기 때문에 권위는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는 길로 가는 것으로 여기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왜곡된 권위 앞에서 예수님은 참된 권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처럼 권위를 힘으로 여기는 것은 참된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참된 권위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음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권위는 어떤 특정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져 있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목사나 장로라는 지위 자체를 권위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자신의 지위에 따른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고 그 권위를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만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는 권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에게 참된 권위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교회의 권위는 무엇입니까?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고 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입니까? 교회의 권위는 교회의 교회 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참된 권위를 위해 오로지 그리스도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이 이끄는 길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말씀을 앞세운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보는 교회의 권위 상실입니다. 참된 권위가 상실됨으로써 교회 또한 권위주의 길로 빠져 버린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 참된 권위 ◉

 

 

교회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재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면 그 존재성은 힘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 힘은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 주는 힘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 참된 힘이 아님을 아는데서 오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믿음을 따라서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족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길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참된 권위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러한 권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권위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자기 확대를 추구하는 교회 또한 이러한 권위보다는 세상에 힘으로 군림할 수 있는 권위를 원합니다.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처럼 권위에 대한 왜곡된 시각에 머문 채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에만 힘쓸 뿐입니다.

 

 

막 1: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권위는 예수님보다는 서기관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서기관과 달리 권위 있는 자의 가르침으로 여겼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외모나 말투와 상관없이 가르치신 내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서 서기관과 다른 교훈을 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 즉 말씀의 능력은 귀신을 쫓아내신 것으로 드러납니다(막 1:23-27). 이것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도 순종하게 되는 말씀으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주어진 권위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사망에서 건지시며 생명에 있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권위는 복음을 복음 그대로 전하는 것이며 신자의 권위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권위 있는 자로 만납니다. 목사든 장로든 모두가 동일한 권위에 속해있습니다. 교회에서의 직책은 단지 역할을 위해 존재할 뿐이지 권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참된 권위는 사탄에게 속한 자로서 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던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한 주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주를 바라보고 주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가 바로 권위 있는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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