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1.01.23 17:00

(122강) 천국과 아이

조회 수 548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 19:13-15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913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설교>

 

◉ 천국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 ◉

 

 

교회는 천국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천국이 무엇이며, 천국이 용납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접적이고 희미하게나마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는 천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천국에 대해 오해를 갖게 하면서 잘못된 천국을 상상하게 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령 교회가 천국의 상급을 말하면서 신자가 세상에서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해 결산하시는데, 선하게 살면서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했던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되 그 정도에 따라 상을 다르게 주시고, 반대로 악하게 살았던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고 가르친다면 이러한 가르침 아래 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천국은 어떤 것일까요?

 

 

천국은 선하게 살고 교회 일에 충성하면 가는 곳이고, 많이 충성하면 많이 충성할수록 상도 많이 받는 곳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이 과연 예수님의 피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인간이 만든 천국 아닌 다른 천국 하나를 상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회가 부흥회를 할 때 ‘예수 믿고 구원 받고자 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고 손을 든 사람들에게 ‘예수의 피로 인해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하면서 박수로 환영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천국을 예수 믿는다는 말만 하면 갈 수 있는 아주 쉬운 곳으로 오해하게 할 뿐입니다.

 

 

또한 교회가 직분의 등급을 나누고 높고 낮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줌으로써 천국 또한 차별적인 등급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도 합니다. 이 외에도 현대 교회가 추구하는 것들을 보면 천국을 보여주고 천국을 나타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천국을 방해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교회의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현대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채 다만 개 교회의 성장과 잘됨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국이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교회 또한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아야 합니다. 천국이 거부하는 것이 있다면 교회 또한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천국을 보여주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 아닙니다. 교회에 몸을 담고 있으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산대로 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하나 먹은 문제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천국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에 의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천국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의 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원칙 위에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 어린아이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 ◉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제자들이 그것을 꾸짖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시고 아이들에게 안수하신 후 떠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천국과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은 18:3절에서 이미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각기 다릅니다. 18장에서는 ‘천국에서 누가 큰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신 말씀이고, 본문에서는 아이들에게 안수하고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고 데리고 온 것을 꾸짖은 것에 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18장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면 천국에서 누가 큰자인가에 대해 질문한 것은 천국을 큰 자 작은 자, 즉 높고 낮음이라는 등급이 존재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는 각기 한 일에 대한 차이가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습니다. 변화산의 체험을 한 제자가 있고 하지 못한 제자가 있으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좀 더 많이 수고하고 적게 수고한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과연 천국에서 큰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어린아이를 등장시켜서 천국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18장에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의미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에 자신의 한 일을 기준으로 크고 작음이라는 구분도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자신이 한 일을 내세워서 크고 작음이라는 차별을 가진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만 살고 있음을 믿는 신자에게만 허용되는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어린아이는 배경이 18장과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을 제자들이 꾸짖은 것은 ‘천국에서 누가 큰가’라고 질문하는 것과는 또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을 꾸짖은 것은 예수님의 안수와 기도가 아이에게는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안수 받고 기도 받는다는 것은 곧 하늘의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자들은 하늘의 복은 아이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천국에서는 아이들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 천국에 대한 제자들의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아이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율법의 세계를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여전히 율법의 세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을 꾸짖은 것입니다.

 

 

율법의 세계에서 아이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들은 율법을 지키고 율법대로 살고자 하는 신앙 세계 밖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어른들의 몫일뿐이고 아이들은 그저 어른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가 예수님에게 안수 받고 기도 받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도 ‘어린아이가 천국 갈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린아이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오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말하는 아이들의 믿음이 과연 온전한 것이고 또한 그런 수준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이 미심쩍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여전히 율법적 사고방식에서 천국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 어린아이 같은 신자는 누구인가 ◉

 

 

그러면 예수님께서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실 때 이런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론 어린아이를 의미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과연 어린아이의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율법적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에게 안수 받고 기도를 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른들의 말대로 예수님이라는 분에게 안수 받고 기도 받는 것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을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행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비신앙적이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차별이라는 통로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나와 타인을 비교하게 되면서 천국에 대한 개념 또한 그러한 의식을 토대로 형성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혜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덮음과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실천과 공로까지도 모두 덮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 앞에서 신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 앞에서 내가 한 일이라며 내놓을 가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자연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때문에 내가 복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인지 아닌지 따져가며 예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은 따로 있고, 천국에 합당한 사람도 따로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거부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천국으로부터 거부당할 사고방식으로만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천국으로부터 거부당할 사고방식으로 살면서도 신앙생활 잘하면 천국가고, 더군다나 큰 상까지 받는다고 우리 멋대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오는 것은 다만 성령님께 이끌려서 나오는 것이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해주시고 기도해주심을 바라는 마음,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늘의 복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오지를 않습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싶고 힘 있는 자 되고 시은 어른의 욕망에 붙들려 나오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만을 말하는 복음이 싫은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 나온다고 하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교회마다 가득합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예수님께 나온다면 그것은 어린아이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천국으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가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을 온통 어른으로 만들면서 교회는 천국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행함을 가지고 자랑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지옥이 돼 버렸습니다. 결국 그러한 교회에서 어린아이처럼 내 놓을 것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 있을 곳이 없는 자로 치부 받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는 것처럼 목사들은 교회에 별 도움이 안되는 교인으로 나오지 말라고 꾸짖습니다.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만한 사람으로 나오라고 다그칩니다. 천국이 약자의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강자가 우대 받는 나라는 오직 세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강자가 우대를 받는다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항상 꾸짖음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약자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천국이 용납할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천국 개념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성령님께 붙들려서 이끌려 이 자리에 나왔음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이 이끌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늘의 복에 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를 인도하여 예수님께 나오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뜻 말고 여러분을 예수님에게로 이끄신 성령님의 뜻을 생각하며 다만 하늘의 복만 소원하십시오. 그것이 어린아이입니다.
 




List of Articles
날짜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010.01.01 공지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성경강해(이전 설교) 은석교회 20123
2012.09.16 411 누가복음 (28강) 열매로 아나니 신윤식 5535
2011.03.13 410 마태복음 (129강) 불쌍히 여기소서 신윤식 5532
2010.05.10 409 마태복음 (86강) 비유의 의미 신윤식 5486
2010.01.18 408 골로새서 (4강) 교회의 머리 신윤식 5483
2011.01.23 » 마태복음 (122강) 천국과 아이 신윤식 5480
2013.10.06 406 누가복음 (80강) 칭찬 받은 불의 1 신윤식 5479
2012.03.25 405 누가복음 (4강) 두 여인의 찬양 1 신윤식 5456
2012.02.12 404 마태복음 (170강) 죽으심과 인간 신윤식 5450
2011.02.13 403 마태복음 (125강) 보상의 문제 신윤식 5444
2011.01.09 402 마태복음 (120강) 천국과 이혼 신윤식 5440
2014.07.20 401 에베소서 (22강) 선한 일을 위하여 신윤식 5431
2011.05.08 400 마태복음 (136강) 혼인잔치 비유 신윤식 5423
2011.06.26 399 마태복음 (143강) 눈 먼 인도자 신윤식 5388
2011.05.01 398 마태복음 (135강) 악한 농부 신윤식 5387
2012.05.27 397 누가복음 (12강) 세례의 의미 신윤식 5386
2012.01.29 396 마태복음 (168강) 십자가의 현실 신윤식 5379
2012.02.05 395 마태복음 (169강) 저주와 구원 신윤식 5373
2012.06.03 394 누가복음 (13강) 예수님의 족보 신윤식 5372
2012.01.08 393 마태복음 (165강) 피의 가치 신윤식 5367
2011.11.06 392 마태복음 (158강) 나는 아니지요 신윤식 535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6 Next
/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