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2.07.15 16:36

(19강) 베드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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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11http://onlycross.net/videos/nuk/nuk-05011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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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설교>

 

◉ 성경해석의 문제 ◉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과 믿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성경을 보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고정관념 안에서 성경을 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의 앞 뒤 내용을 살피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몇 구절만을 선택하여 자신의 고정된 생각에 맞게 꿰맞춤으로써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초래된 결과는 교회의 교회다움과 신자의 신자다움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뜻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서 여전히 자신의 뜻이 살아있는 욕망의 길로만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생명이 되는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도 말씀에 관심을 두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본문에서 주로 언급되는 구절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는 베드로의 말과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는 결과일 것입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복을 받는다거나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말씀을 전도의 사명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이런 시각으로 보게 되면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도 결국 같은 의미로 해석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시면 서로 중복된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복된 내용 모두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성경을 단편적인 자기 시각으로만 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이 서로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기 자신이 만나고 깨닫게 되고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들의 마음이 예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는 내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신 내용은 누가 복음과 함께 모든 복음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마태와 마가복음은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오셔서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형제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하고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온 것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차이점들 하나하나가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 ◉

 

 

본문 또한 다른 복음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는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 후에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고기를 많이 잡게 된 일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 후의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저자들 각자가 성령이 깨닫게 하신 바를 따라 받아들이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은 사건을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과 연결하여 말하는 것일까요?

 

 

1절을 보면 게네사렛 호숫가에 계신 예수님께로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너무 많은 무리가 몰려와서인지 예수님은 호숫가에 있던 배 두 척 가운데 한 배에 오르셨는데 그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서 무리들에게 가르치셨는데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 잡느라고 고생을 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어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베드로는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런 반응은 의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은 베드로가 배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기 때문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칭송을 하고,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말씀이 권위가 있음으로 놀란 것처럼 베드로도 권위 있는 말씀에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고 비록 자신들이 밤이 새도록 허수고만 하였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의외의 행동은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우리 같으면 다음 행동이 어땠을까요? 말씀에 순종했더니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았다며 자랑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간증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말씀에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주시더라고 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에는 거짓도 난무 합니다.

 

 

◉ 베드로의 고백 ◉

 

 

그런데 베드로는 난데없이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나를 떠나소서’라고 합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아 놓고서 이 같은 고백을 한다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베드로가 이 같은 반응을 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전혀 새로운 체험을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함께 있던 모든 사람과 함께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랐다고 합니다. 그 놀람은 예수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부에게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것은 신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고기 잡는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단지 선생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신적 권위를 가진 말씀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바라보게 되고 거룩하신 분 앞에서 자신의 더러움이 노출되면서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인한 베드로의 체험이고 반응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지만 그는 많은 고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말씀을 체험한 그의 마음은 오직 예수님에게로만 향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기를 잡은 것에 관심을 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 권위,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의 간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베드로의 간증을 보면서 무엇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체험한 신자의 간증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놀라운 일은 계속 이어집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이 한마디 말씀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버려둔 모든 것에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은 고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예전의 삶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길로 들어섬을 뜻합니다. 이미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체험하고 놀랐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버린 것입니다.

 

 

◉ 말씀 체험 ◉

 

 

이처럼 말씀의 체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게 합니다. 베드로가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은 말씀의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인간된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말씀의 체험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씀의 체험, 즉 신앙의 체험을 신비적이거나 놀라운 현상을 체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체험을 전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인이라는 고백보다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은 고기에 관심을 두고 있고, 그러한 체험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을 아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현대인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왜곡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 신자가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당시 제자들처럼 생활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우리와 육신으로 함께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부터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만약 모든 신자가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과연 그 길이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것을 베드로가 잡은 고기까지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기독교가 혼탁해진 이유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신 것은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체험하게 하심으로써 그가 죄인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죄에서의 구원이 곧 예수님께 있음을 알고 믿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구체적인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내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오셔서 깨끗하게 하시고 자유케 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면 그것이 곧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임을 믿는 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물 가득히 잡은 고기보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가득히 잡힌 고기로 인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이 사건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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