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3.10.20 09:25

(82강) 부자와 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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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6:19-31http://onlycross.net/videos/nuk/nuk-16193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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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설교>

 


◉ 자기 기준을 가진 사람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사람의 회개로 더 기뻐하시는 분임을 몰랐습니다. 사실 회개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의인 아흔아홉과 죄인 한 사람은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누가 생각해도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의 회개보다 의인 아흔아홉의 의의 실천에 기뻐하시는 분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회개가 비록 중요하다고 해도 회개는 신자로서 기본적인 것이고 실천은 믿음의 열매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 하는 것을 두고 수군거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이들의 기준에서 보면 세리와 죄인들은 하나님의 저주에 속한 부류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것을 증거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에 비해 그들의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께 기쁨의 대상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형편도 그것을 증거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요하게 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의로운 생활로 인해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처럼 보였고, 그에 비해 죄인들의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증거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으면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웃음으로 반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주의자이고 복음을 모르며 예수님을 죽인자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의 평소 신앙생활은 지금의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신앙생활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교회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오죽 하면 예수님이 이들을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비유하셨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몰랐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종교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의 종교 기준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죄인 한 사람의 회개로 더 기뻐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15장과 16장에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비유는 이처럼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멋대로 생각하는 이들을 향해 하신 경고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 부자와 거지 ◉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도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부자로서 당연한 삶을 산 것입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겨우 허기를 면했고,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는 죽음 이후의 세계로 이어져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것으로 반전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쉽게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 갔고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믿음에 대한 여부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물론 결과만을 두고 말한다면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결국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돈만 좋아하고 세상을 즐길 줄만 알았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지옥 갔고,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었고 천국을 대비하고 살았기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본문에 그러한 내용은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 부자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긴 것 자체를 두고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부자가 자신에게 있는 돈으로 호화롭게 즐긴 것이 잘못이라면 모든 부자는 돈이 있다 해도 즐기면 안 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부자와 거지의 삶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대문 앞에 불쌍한 거지가 있는데 혼자서 호화롭게 즐긴 것이 부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대문 앞에 더러운 거지가 있음에도 쫓아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면 그나마 부자는 나사로를 많이 봐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문 앞에 그냥 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나사로를 집에 들여서 헌데를 치료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부자의 잘못으로 여겨진다면 그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노숙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목격했을 때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두는지 말입니다. 어쨌든 본문에서는 부자의 잘못된 행동이나 나사로의 믿음의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우리의 추측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누가 복 받은 자인가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본문 이야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차별했던가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신 의도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누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인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거지 나사로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이 죽은 후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음 이후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이들이 생존해 있을 때만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부자가 복 받은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복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부자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의미한다면 부자는 하나님을 가장 철저하게 믿는다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복 받았다고 자부하며 살았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지 나사로는 세리와 죄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누가 봐도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일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내용 그대로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난다면 여러분의 눈에는 누가 하나님께 복 받은 천국 백성으로 보이겠습니까? 더군다나 부자는 평소 하나님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고, 나사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부자에게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복을 받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기준입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에 따라 결정될 뿐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은 우리의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특이한 것은 거지의 이름을 나사로로 언급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는 경우는 나사로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거지의 이름을 나사로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나사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입니다. 이 이름의 뜻과 나사로의 현실의 삶은 정말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이 거지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복과는 거리가 멀고 저주 받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정도입니다. 세상의 시각에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는 거지가 아니라 부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란 이름을 통해서 저주 받은 것처럼 보이는 거지를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로 부각시키면서 죽음 이후의 각기 다른 결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단순히 천국에 갔다고 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입니다.

 

 

 24절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가 자신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여기는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아브라함의 품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의 품에 당연히 있어야 할 부자가 아닌 거지 나사로가 안겨 있는 것입니다.

 

◉ 부자의 문제 ◉

 

부자는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라고 애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자가 생존해 있을 때 그에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긍휼히 여기사’라는 애통함입니다. 부자가 자신을 긍휼히 여김 받을 자로 여기지 않았을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요하게 살고 호화롭게 즐기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긍휼히 여김 받을 자로 바라보겠습니까? 이들이 바리새인 서기관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긍휼히 여김 받을 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훌륭하게 잘 하고 있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자신들을 긍휼히 여김 받아야 할 자로 보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앙 가지고도 천국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조금 이상한 내용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로 좋은 것을 누리고 산 사람은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고 반대로 가난하게 살며 고난을 받은 사람은 그 보상으로 천국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공평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세상에서 고난 받은 사람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다는 것은, 부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부자 스스로 자신이 누리는 부를 좋은 것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부자에게 좋은 것은 그가 누리는 부요였습니다. 부요함을 좋은 것으로 여겼기에 인간의 인생에 진심으로 좋은 것은 나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줄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때문에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께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주실 좋은 친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나에게 정말 좋은 것임을 안다면 부요하든 가난하든 재물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재물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재물이 많다는 것으로 복 받았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자 되기를 원합니다. 거지 나사로보다는 부자 쪽에 마음을 두고 삽니다. 예수님은 비록 부자가 지옥 간 것으로 말씀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부자 되도 지옥 갈 사람처럼 살지 않을거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사람은 누구나 지옥 갈 자로 살고 있음을 외면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할 예수보다 여전히 돈이 좋다는 본심을 드러내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27절에 보면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형제들에게 증언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자는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할 것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다 해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회개를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생존했을 때는 필요 없다고 여겼던 회개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자는 죽은 자가 살아난 기적을 보면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기적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천국 간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그들은 거부합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사람, 즉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불쌍히 여김 받아야 함을 알고 긍휼을 구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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