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3.16 10:13

(6강) 구원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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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1:3-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10306(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설교>

창세기 1: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활동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적인 하나님의 활동은 창 1:1절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창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따라서 창 1:1절의 의미를 눈에 보이는 부분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접근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이전의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창조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에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그 때문에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왜곡된 사랑과 은혜에 집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즉 택함은 창 1:1절의 태초의 천지창조 이전에 있었던 일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활동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역시 창 1:1절 이후의 일이 아니라 태초 이전에 이미 수립된 계획입니다. 이처럼 창 1:1절의 태초는 하나님의 완벽한 뜻과 계획안에서 실행되는 하나님의 활동의 시작인 것입니다.

 

 

창세전의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어려움에 있는 인간을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 사랑이 아니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시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4절의 말씀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신자는 어떤 환경의 삶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 있음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이 믿음이 신자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결국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는 인간 구원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신 것도,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신 것도 우리를 아들들이 되게 하셔서 천국에 살게 하기 위한,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6절 말씀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의 의미와 결론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3-5절까지의 모든 일이 우리에게 거저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이유입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중심이 된 성경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중심이 된 해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교회가 성경을 말하지만 그 대부분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유도 하나님의 계획과 그 뜻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 1:1절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선악개념에 붙들려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해석에서 나오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한 신입니다. 인간의 복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강조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신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이 죄로 규정한다는 것은 전혀 모른 채 오히려 믿음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의 실상입니다.

 

 

‘창세 전’은 ‘창조 전 언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전에 세우신 뜻과 계획이 곧 창조 전 언약인 것이고, 하나님은 그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과 무관한 창조인 셈입니다. 이처럼 인간과 무관한 창조를 인간을 위한 창조로 연결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창조로 이해하게 되면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창세기 2장을 넘어설 수 없게 됩니다. ‘선악과를 왜 만드셨는가?’라는 의문이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한 창조라면 선악과는 물론이고 사탄의 존재 자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됩니다. 결국 이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궁색한 말로 곤란을 면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창조로 접근하게 되면 선악과와 사탄의 존재, 인간의 범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서 세상이 생각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발견이 신자를 자유로 이끌어 갑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에게 매인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부른다면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세상의 그것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종교의 세계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자유하게 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이유가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잘됨과 성공으로 인한 찬송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영광으로 인한 찬송이 구원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현재의 형편과 환경을 초월하여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강렬해서 모든 형편과 환경을 초월하게 하고 오로지 사랑과 은혜로 인한 감사와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로지 그리스도에 중점을 둔 말씀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히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는 말로 표현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 사랑과 은혜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는 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는 것입니다.

 

 

골 1:16절에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만물이 누구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합니까? 그를 위해서입니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아시겠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지 인간을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죽을 수도 있고 고통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존재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고 찬송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으시겠다는 목적 안에 존재합니다. 이 목적에 따라 우리 인생이 주관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절대로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신자라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있음을 잊지 않고 찬송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즉 자기 부인이 실현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내 인생이라는 말 자체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내가 세상에 존재함으로 시작된 것인데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 자체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의 하나님의 계획, 즉 창세전의 언약에 의해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뜻에 여러분 전부를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붙들려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세상에서의 일이 되고 안 되는 것으로 울고 웃기보다는 나 같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송케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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