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10.31 19:45

(83강)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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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6:18-24http://onlycross.net/videos/eph/eph-06182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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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21.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설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의 결론을 기도하라는 말로 끝냅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사도가 말한 그 어떤 것도 신자가 자신의 힘으로 실천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뜻과 힘과 열심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본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도가 아니란 것입니다. 본인의 뜻을 위한 기도는 종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일 뿐 말씀의 세계에 그러한 기도는 없습니다.

 

 

18절을 보면 사도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고 말하는 것은 신자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뜻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신자는 어떤 일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신앙을 좀 더 경건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기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지 성령 안에서의 기도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라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행하신 일들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악한 자이며 의를 행할 수 없는 오직 심판의 존재일 뿐이라는 앎으로 인해 자신이 뭔가 되고자 하는 뜻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부인되어지며 하나님의 행하심만이 증거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린 대개 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의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를 할 때도 은혜가 되는 기도, 멋있는 기도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을 의식하는 기도이기에 성령 안에서의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자신이 철저히 부인되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의 내용을 “내게 말씀을 주사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라고 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바울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러한 내용으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내게 말씀을 주사’라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말씀은 사람이 스스로 연구하여 깨우치고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받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학생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수학을 배워서 머리에 담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보여주고 알게 하며 세상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그 세계를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담대히 알리고 있다면 어디까지나 바울 자신의 지식과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세계에 강력하게 붙들려 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말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바울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씀을 붙들고 있다면 ‘내게 말씀을 주사’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그와 같은 내용으로 기도할 것을 말함으로써 바울만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붙들려 있음을 알게 하고, 항상 말씀에 의해 붙들려 가는 믿음의 길을 소망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기도 자체를 신앙의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 한 것을 두고 신앙생활을 했다고 간주합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길게 기도해서 기도하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서 기도가 또 하나의 신앙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현대 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성령을 벗어난 기도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서 교회에 성경적이지 않는 표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해’‘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기도 위에 꿈을 짓다’‘기도하여 승리하자’등의 표어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이러한 표어들 하나하나가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보여주고 있는 증거일 뿐입니다.

 

 

물론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해’라는 말을 ‘말씀에 의해 자신이 부서지고 부인되는 기도에 전력을 다하는 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의미의 기도를 생각하는 교회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거의 모든 기도가 인간을 향해 기울어져 있음을 본다면 어떤 표어를 정하고 기도를 독려한다고 해도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아닌 것입니다.

 

 

고전 2: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받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이 말씀에서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은혜 받기 위한 수단도 아닌 것이 됩니다.

 

 

20절을 보면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으로 표현합니다.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은 옥에 갇힌 형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한 것으로 여깁니다. 쇠사슬에 매인 가운데서도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심으로 바울을 붙들고 있는 말씀의 강력함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 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말씀에 붙들려서 말씀에 의해 담대히 말하게 된 것일 뿐 바울 스스로의 힘으로 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말하게 하신 참된 주체를 바라보며 그 분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바울의 의도입니다.

 

 

12절의 내용처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한 영을 상대하는 것이고 악한 영은 인간으로 하여금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악한 영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로 인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깊이 자각하는 그것이 성령으로 인해 은혜를 알게 되고 주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외부적인 무엇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 된 그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신자는 몸도 내 몸이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뜻을 위한 것이고 복음의 비밀을 알리게 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으니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몸으로써 복음을 위한 몸으로 사용되기를 위해 기도하게 될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에게는 고난도 복음을 알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복음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날 위해 사는 것만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생각을 버리고 복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본성적으로 무능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을 주셔서 복음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무능한 자신을 붙들어 복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무엇을 하든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바울의 고백처럼 부득불 하게 된 일로 증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 받은 신자에게는 자신의 열심, 자신의 수고, 자신의 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만 있을 뿐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은혜이고 동일한 은혜로 함께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수고와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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