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4.03.09 09:33

(5강) 은혜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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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1:3-6http://onlycross.net/videos/eph/eph-010306(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설교>

 

종교의 중심에는 신이 아니라 인간, 즉 ‘나’가 있습니다. 때문에 나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이 나를 감동시켜 주고, 나를 위로해 주며, 세상의 모든 일에서도 나에게 도움 되기만을 원합니다. 이것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속성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기독교가 참된 신앙의 길로 가는지 아니면 종교의 길을 가고 있는지의 여부는 그 중심에 누가 있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말은 하나님 중심인데 실제는 ‘나’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의 만족을 위한 존재로 여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만약 진심으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이 나 같은 자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의 십자가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그 은혜를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이처럼 아주 간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앙이 그게 전부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받은 자답게 내 놓는 것이 있어야 하고 내 놓는 것이 많을수록 신앙이 좋은 것이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의 삶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중심의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중심의 인간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신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같은 신앙의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끝까지 스스로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다’는 말로 바꿉니다. 결국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남기보다는 능력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오해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게 하신 그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이나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런 일을 하게 하려고 능력 아래 있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죽은 자 되게 하시는 것이 능력입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게 하시고 전적으로 무능력한 자임을 깨닫게 하셔서 나가 없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 능력입니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능력으로 여기겠습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능력은 세상에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힘이고, 그 힘을 나타냄으로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원하는데 자기 존재 부정이 능력이라는 이 말을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애초에 자신이 부정되는 것에 신앙의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나의 존재 부정을 말하는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아들들이 되게 하신 모든 일의 목적은 6절 말씀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이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은 거저 주신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신앙이 종교로 변질되어서 자기 이름과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 작금의 현실일 뿐입니다.

 

 

이미 지금의 교회는 복음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욕망에 오염되어 제멋대로 해석되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진리라며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납득되지 않으면 거부당하기에 결국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환영할 수 있는 말로 뒤바꿔 그것을 복음으로 포장하며 판매하고 있는 실정일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아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에 온 마음을 두기를 소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주변에서 나를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상관없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가 악한 자신의 마음에서 감사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에 있게 되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도 딴죽을 걸게 됩니다. 가령 하나님의 선택을 말하면 ‘선택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지옥가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 선택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선택한 사람만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지 왜 선택되지 않은 사람도 태어나게 하시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선택하지 않은 사람도 태어나게 하셔서 지옥가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선악개념에 의한 인간중심적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을 위한 존재, 인간을 만족스럽게 하고 인간을 돕기 위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이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악개념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택하지 않은 자들을 지옥가게 하시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지 인간 구원에 있지 않습니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죄가 드러나게 하신 것이고 그 죄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함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저주신 은혜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를 높이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부름 받은 자의 사명인데 가만히 앉아서 은혜만을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반박입니다. 물론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일꾼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힘과 열심으로 전도하고 봉사하여 어떤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요 6:29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곧 하나님의 일에 초청된 것이고, 성경을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인간의 무능력을 깨달으며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만 은혜만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와 완성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택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늘 말씀을 동원해서 우리의 죄가 발각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발각되면 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가 죄를 범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보신 것입니다.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를 거저 주신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대가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너도 받은 만큼 내 놓으라’는 요구가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은혜를 받은 만큼 내 놓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은혜를 빙자해서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치 엘리사는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는데 사환 게하시가 쫓아가서 대가를 받아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창조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자라면 자기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에 뜻을 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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