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6.28 22:18

(93강) 천국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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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51-52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3515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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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1-52)

 


<설교>

 

◎ 복음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만으로 이미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고 오직 순종만이 요구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말씀에 복종하는 것보다는 자기 몸에 관심을 두고 자기 몸을 위해 사는 길로 뛰어 들게 됩니다.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다만 자기 몸에 유익이 되는지 안되는지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었고, 육신을 위한 삶에 매진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우리가 주일이면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에 모입니다. 겉으로는 한 주일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성경책을 펼치고 찬송을 부르지만 한 주간의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파헤쳐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직 나의 욕망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이 목사가 말하는 예배 순서대로 찬송을 부르고, 대표기도를 듣고 남들 따라 아멘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남는 것은 불만뿐입니다.  

 


인간은 육신을 향한 욕망과 집착으로 살아갑니다. 자식을 낳으면 자식 또한 자신의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부모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식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이처럼 욕망과 집착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의 속성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러한 욕망과 집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욕망과 집착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욕망과 집착이 없으면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고 자연히 세상의 경쟁에서 밀려나 실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에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과거 역사의 존재로만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과거 역사의 존재로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피로 죄가 용서되고 구원받은 것 역시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현실에서 십자가만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앉은뱅이 신앙이라는 비난까지 합니다.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은 지금은 신자에게 함께 하시고 신자의 삶을 도우시며 지켜주심으로써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복주시고 성공의 길로 인도하심으로써 예수님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십자가를 듣기 싫어합니다. 십자가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구원된 자에게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십자가가 욕망과 자기 집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향에는 도무지 맞지 않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욕망과 취향에 맞는 다른 예수를 조합해 냅니다. 그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응답해주고, 만사형통의 길로 인도하며, 평안한 삶이 되도록 지켜주는 예수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 새것과 옛것 ◎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씀한 예수님이 누구시고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취향에 맞는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앎으로써 인간의 욕망에 의해 조합되어진 다른 예수와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0절)고 말씀합니다. 천국을 깨달은 사람은 천국을 가르치고 증거하는 제자된 서기관과 같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은 새것과 옛것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각이고, 새것과 옛것을 통해서 천국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직무입니다.

 


새것이 있기에 옛것을 버려서도 안되고, 옛것이 좋다하여 새것에 무관심해서도 안됩니다. 옛것과 새것이 서로 다르지 않고 일관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천국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것은 구약성경, 즉 모세 율법을 의미하고, 새것은 신약성경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성경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신약성경을 뜻하는 새것을 말씀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옛것과 새것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옛것은 모세 율법으로써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증거물이었습니다.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의로운 자가 된다고 여겼기에 자연히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라는 통로가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당연했고, 자연히 하나님의 의의 백성은 율법이 주어진 유대인들뿐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지탱해준 중요한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자라는 천국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른다고 하지만, 그것은 추수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이 가라지가 보이는 당장 뽑아 버려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옛것만을 기준 한다면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유대인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의의 백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법대로 할례를 행하고, 십일조 하고, 제사 드리고 제물 바치며, 모든 절기와 의식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인들 말고 누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옛것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의입니다.

 


하지만 새것이 등장함으로써 옛것에 대한 인간의 시각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옛것, 즉 율법에서 자신들의 의를 생각했지만 새것이 옴으로써 옛것은 새것을 바라보고 믿게 하기 위한 용도로 주어졌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옛것 아래서의 인간은 선과 악을 스스로 구분하여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착하게 살면 그것이 곧 천국에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생각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옛것인 율법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의가 나올 수 없는 불의한 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율법을 의를 행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새것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새로운 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의 의이기 때문에 새것을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는 신약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 주인은 옛것과 새것을 함께 내어 놓음으로써 옛것으로 새것을 증거하고 새것은 옛것으로 말미암아 그 새로움이 어떤 것인가가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옛것과 새것을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합니다. 옛것을 통해서는 오늘날 신자가 행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 규례를 얘기하고, 새것으로는 구원 받은 신자가 행해야 할 도덕적 삶과 교회생활을 얘기합니다. 자연히 옛것과 새것을 통해서 증거되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다만 인간이 행해야 할 것들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새것이 없이 옛것만 본다면, 즉 새로운 의로 오신 그리스도가 없이 구약만을 본다면 구약은 영원히 저주의 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새로운 의로 오심으로써 저주에 속한 자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옛것과 새것이 함께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 세상에 펼쳐진 천국인 것입니다.

 

 

◎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

 

여러분은 천국을 깨달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천국이 어떤 것인지 아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옛것만을 내어 놓았을 뿐입니다. 새로운 것이 그들에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옛것을 참된 것으로 지키고자 했고, 새것으로 인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옛것이 손상되고 허물어지는 것을 참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옛것이 새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새것을 증거하는 것이 옛것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옛것과 새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옛것과 새것이 일관되게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옛것과 새것이 증거하는 참된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는 신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옛것과 새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옛것과 새것을 통해서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생명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의 은혜의 일을 교회를 통해서 증거하시기 위해 여러분을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으로 부르신 것이지 단지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물음을 그동안 천국 비유를 들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시고 스스로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 여러분은 과연 어떤 천국을 깨달았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피와 살을 생명으로 주신 분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이루어진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지식입니다. 성경적 이론을 아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온전한 지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에 펼쳐진 천국은 새로운 의의 나라이고 생명의 나라입니다.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가치를 외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겨자씨로 비유되고 누룩으로도 비유될 수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처럼 작고 세상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생명을 품고 있기에 위대한 나라이고,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의는 우리를 부풀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천국입니다.

 


이 천국은 의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발견되는 것이고, 의라는 보배를 가진 자로 존재하기에 세상에서의 다른 보상은 기대하지 않으며 가라지와 함께 하고 못된 고기와 함께 하면서도 생명이 되시는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이 천국을 깨닫게 하시고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천국을 깨달은 신자의 직무이고, 신자는 서기관으로써 이 직무에 봉사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주인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것과 옛것으로 참된 그리스도를 내어 놓을 수 있는 그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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