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10.07.05 19:14

(94강) 고향 사람의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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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3:53-58http://onlycross.net/videos/matthew/ma-13535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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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 13:53-58)

 

 

<설교>

 

◎ 신비한 체험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 ◎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천국, 성령에 대해서 신비적인 기대와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아닌 쉽게 볼 수 없는 신비적인 사건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일상이라고 말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나 인도하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이 일곱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천국은 신비적인 나라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세상 나라가 아닌 천국이기에 분명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다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상과 달리 신비적인 어떤 현상과 환경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역시 세상에 임해 있는 천국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어서 들어가는 천국만 막연하게 기대할 뿐입니다.

 

 

성령은 또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성령 충만’ ‘성령 폭발’입니다. 이러한 말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람들의 기대는 신비한 체험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짐으로 인해서 과거에 해 보지 못한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방언을 한다거나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거나, 가슴이 뜨거워진다거나, 환상을 보게 되는 등의 체험만을 성령이 충만함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로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특이한 체험이 없는 일상생활은 성령과 상관없는 삶으로 무시하게 됩니다.

 

 

롬 8:14-1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신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고 아버지라 부르는 것 자체가 성령으로 인도 받고 있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 곧 성령의 역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른 체험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로 인해서 항상 성령으로 인도를 받고, 성령이 역사하는 삶을 살면서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또한 이미 세상에 임해 있는 천국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시각과 생각이 예수님도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 예수님을 잘 아는 고향 사람 ◎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를 마치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라며 놀랍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과 그 증거가 그들이 그동안 회당에서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면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면서 지혜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외적 조건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와 누이에 대해서도 그들은 잘 알고 있고, 또 그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출신이나 가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는 그처럼 놀라운 말씀과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처럼 유명한 율법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한다면 이름 있는 신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신학박사도 아닙니다. 한낱 목수의 아들 출신일 뿐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서는 놀라운 지혜와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된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육적인 것은 육으로부터 나오지만 영적인 것은 육이 아닌 오직 영으로부터 나올 뿐입니다. 저들은 이 같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육은 전혀 연관이 없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가령 신자가 복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육의 말이 아니라 영의 말입니다.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로 말미암아 나오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육신의 그 어떤 조건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말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외적인 조건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복음보다는 그 사람의 외적 조건에 치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 비록 예수님이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하셨지만, 예수님을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왜 천국 비유 다음에 예수님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신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세우신 천국이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무시를 받을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외적인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천국이 아니기 때문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도 천국에 대한 생각과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한 천국이 여러분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고 있습니까? 어쩌면 목사 개인의 말로 치부하면서 여전히 여러분이 생각하는 천국을 마음에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기대하고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내용과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하나라도 맞는 것이 있습니까?

 

 

유대인들도 메시아에 대해서, 그리고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어줄 나라, 즉 천국에 대해서 기대하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유대인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위대한 일을 이뤄 줄 것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은혜이며 능력입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베푸신 것만이 은혜요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악한 죄인으로 취급했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 집에 유하며 먹고 마셨습니다. 마태만이 아니라 모든 죄인들을 거부하지 않고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겉으로 보면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같지만 실상은 죄인들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권세요 생명의 능력입니다. 즉 죄인들에게는 은혜가 충만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저주 받은 자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놀라운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고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은혜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함께 하심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베푸신 예수님의 신령한 은혜의 것들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만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만 예수님을 배척했다면, 이스라엘의 다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메시아로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예수님을 배척 하고 십자가에 죽였음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말씀한 고향 사람은 유대인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이르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외적 조건과 상관없는 복음 ◎

 

이 이야기는 단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과거의 사건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서도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육신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배척한 유대인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예수님을 배척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고 있고, 십자가에 죽으심도 믿고 있고, 예수님의 피가 생명이라는 것도 믿고 있기에 그런 자신이 예수님을 배척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은 누구를 통해 말씀을 증거하십니까? 지난주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1,52)는 말씀을 보면 천국을 깨달은 신자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입니다.

 

 

여러분, 천국을 깨달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며 새것과 옛것을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주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여러분은 자신을 천국의 서기관으로 여기십니까? 목사라면 몰라도 아마 대다수의 신자는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천국의 서기관 일 수 있느냐?’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서기관이라면 천국을 증거하고 전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이 천국을 깨달은 신자입니다. 천국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하늘의 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지혜를 주셔서 깨닫게 하신 것이 곧 천국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종으로 부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깨닫고 진리가 곧 생명임을 깨달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 받은 일에 육신의 조건은 애초에 관여된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관계 또한 육신의 조건이 관여된 관계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목사를 초빙할 때 조금 큰 교회는 목사의 학벌과 학위를 매우 중요시 합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벌이 좋고 박사 학위가 있고 해외 신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목사가 전하는 복음이라면 전혀 의심할 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학벌이나 학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오직 성령의 지혜를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누구라도 서로에게 권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만 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권면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깨닫고 복음을 깨달은 모든 신자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목사든 신자든 같은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분위기는 신자가 목사에게 복음의 문제에 대해 권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성경에 대해 전문가이지만 신자는 비전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전문가인 신자가 전문가인 목사에게 성경 문제를 가지고 권면을 하고 따지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님의 종을 반대하는 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복음에 대해 서로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권면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권면한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말을 잘 듣지를 않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복음이라고 해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신자는 천국을 깨닫고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부활의 주가 함께 하시고 성령이 역사하고 있고, 그 입에는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자가 모여서 외적 조건을 따지고 그것으로 사람을 구별한다면 스스로 복음을 부인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와 신자는 얼마든지 복음으로 서로를 권면할 수 있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것이 한 몸으로 부름 받은 지체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낮아진 자리에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외적인 모든 조건과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모두 버리고 예수님께 나오는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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