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02.02 10:35

(95강) 므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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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11-27http://onlycross.net/videos/nuk/nuk-19112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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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설교>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 ◉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관되고 있는 세상에서 행여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 늘 조바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조바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어 보기도 하지만 결국 현실은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무너뜨리기위해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리고에서 만난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심으로 구원은 인간의 기준이나 원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으로 행해짐을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자신들의 잣대로 나름대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세리장으로 일하는 삭개오는 구원, 즉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시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심으로 이들의 천국에 대한 잘못된 기준과 생각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삭개오와의 만남 이후에 계속 해서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도 이들이 천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면 하나님 나라가 곧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핍박하던 모든 세력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이 중심이 되는 국가 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삶의 풍요라는 현실로 연결되어지기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하나님 나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므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비유의 내용 ◉

 

예수님의 므나 비유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유다를 다스렸던 헤롯이 로마 황제로부터 왕위를 받은 것처럼 더 높은 위치에 있는 황제에게 왕위를 받아 오기 위해 길을 떠난 것입니다.

 

 

이 귀인은 길을 떠나기 전에 종 열을 불러서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지시합니다. 종 열 명에게 각기 한므나씩을 준 것입니다. 므나는 은화인데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의 가치에 해당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임금임을 생각하면 한 므나는 백일의 임금에 해당되기 때문에 적은 액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백성들 중에는 이 귀인을 미워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어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라며 반대 운동을 펼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은화를 준 종들이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알고자 하여 종들을 부릅니다. 첫 번째 종이 나와서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라고 보고하자 왕이 되어 돌아온 귀인은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칭찬합니다.

 

 

두 번째 종 역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음을 보고하고 다섯 고을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 종이 와서 보고하기를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라고 합니다.

 

 

이 종은 주인이 준 므나로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수건으로 싸두었을 뿐입니다. 당연히 남긴 것도 없습니다. 이 종이 그렇게 한 이유는 주인이 엄한 사람인 것을 무서워했고, 또한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둔다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심은 것도 없이 거두려고 하는 한마디로 말해서 욕심 많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종이 므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만 하고 있었던 것은 행여 장사해서 손해를 보고 므나를 잃어버림으로 엄한 주인에게 벌을 받지 않을까 무서워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므나라도 내어 놓기 위해 므나를 보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종은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라고 책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와 함께 돈을 내 놓는 것이 옳았다고 하며 곁에 섰는 자들에게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열 므나가 있는 사람에게 또 다시 한 므나를 주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을 하면서 왕 됨을 원하지 않던 원수들을 끌어다가 죽이라고 하는 것으로 비유가 끝납니다.

 

 

므나 비유는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비슷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화폐의 단위이고(눅 – 므나, 마 – 달란트) 마태복음에서는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맡기지만 본문에서는 열 명의 종에게 동일하게 한 므나씩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달란트 비유가 등장하지만 본문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누가 복음은 주인이 길을 떠난 이유를 왕권을 받아 돌아오기 위한 것으로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서로 비슷한 비유이긴 하지만 비유의 등장 배경과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므나 비유를 통해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실까요? 먼저 주지해야 하는 것은 이 비유의 등장이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포함해서 당시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들 생각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예루살렘에 가셔서 메시아로서의 일을 하시고 이스라엘을 영광의 나라로 세우시면 되었습니다. 메시아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신 말을 들은 사람들이 구원을 곧 이루어질 현실로 생각했기에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십자가가 없는 구원을 생각하고 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고 세상 중심에 서게 되면 자연 자신들의 삶 또한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그 같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비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며,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나타나는 것도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이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와 무관합니다. 따라서 메시아가 이룰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되었고 그 기준이 곧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엄한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믿음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 없이 율법만으로 엄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인정받고 그 나라를 누리게 될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므나를 수건에 싸둔 종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므나의 의미 ◉

 

귀인이 왕권을 받아 돌아오는 기간은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늘로 가심으로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다른 왕을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아마 자기들 마음에 드는 왕일 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왕 되심을 싫어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를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스리고, 자신들의 원하는 말을 해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그런 왕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시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가신 그 길에 순종하라고 하신 예수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인이 길을 떠난 후에도 귀인의 말을 따라 충성한 종들이 있습니다. 주인이 맡긴 므나로 장사한 사람들입니다. 주인은 열 명의 종에게 동일하게 한 므나씩을 맡겼습니다. 여기서 므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려면 열 명의 종들이 동일하게 한 므나씩을 받았다는 것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므나의 의미를 흔히 생각하는 은사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은사란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면서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주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이며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므나를 주시면서 장사하라고 하신 것은, 성령을 주시고 성령으로 살라고 하신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에 뜻을 두고 십자가를 높이고 자랑하는 길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늘 자각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 같은 자에게 어떤 복으로 다가왔는지를 생각하며 예수님만 높이는 자로 사는 것이 장사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때까지 신자의 삶을 주관하는 정신으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악한 종으로 책망 받은 종처럼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자기 방식의 길을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단지 신자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교회 생활을 합니다.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주일을 지키며 신자라는 이름만 갖고 있으면 책망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이 과연 그런 곳입니까? 예수님이 그런 분이실까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피 흘리시며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기도하지 않고 주일 지키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복을 주지 않으시는 분일까요?

 

 

예수님을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복주시거나 책망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면, 그들은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도 자비와 긍휼도 알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생활은 자신을 위한 것일 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십자가를 아는 신자 ◉

 

열 므나를 남겨서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고, 다섯 므나를 남겨서 다섯 고을을 차지한 차이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충성된 종이라면 남기게 된 것도 자신의 힘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주인이 맡긴 한 므나에 의해서 맺어진 열매로만 바라본다면 열 므나를 남긴 것도 자신의 공로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참된 종은 스스로를 무익한 종으로 여길 뿐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아는 신자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신자는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의 차이를 상급의 차이로 연결하여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악한 종으로부터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자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다며 불평합니다.

 

 

이들은 열 고을의 권세를 받은 사람에 대해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추가로 한 므나가 주어지자 불평이 앞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드러내는 것은 신자가 십자가를 신앙의 중심에 두지 않을 때 그의 신앙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보내신 것은 우리의 신앙을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심이 된 길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한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신앙의 삶에 힘쓰는 신자는 성령으로 인한 열매가 있게 됩니다.

 

 

자신의 행함을 보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기쁨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에 깊이 들어갈수록 이 기쁨은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혹시 천국에서 상을 받지 못할까 염려함이 있다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주신 성령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의 왕 됨을 반대했던 자들과 함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충만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신자는 주님이 오실 때를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다리며 인내하게 됩니다. 현재의 삶에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질 영광의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것을 크신 은총으로 여기며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됩니다. 있는 자로 더 큰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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