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8.22 17:50

(75강) 성령의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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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8-21http://onlycross.net/videos/eph/eph-05182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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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설교>

 

사도는 본문에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기독교인의 음주에 대한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는 술 취한 것을 방탕한 것으로 말합니다. 술 취한 것과 방탕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술에 취했다고 해서 그것을 방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술 취함과 방탕이 함께 언급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롬 13:13절에서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라고 말하고, 벧전 4:3절에서는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눅 21:34절이나 갈 5:21절에서도 술 취함과 방탕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방탕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엡 4:19절에 보면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합니다.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각이 없는 상태를 방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눅 21:34절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한 내용에서도 방탕을 마음이 둔하여 진 것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술 취함은 방탕과 함께 마음이 둔하여 진 상태로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이 탐욕을 따라 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함과 마음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면 그 날에 대한 감각이 무딘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에게 마지막 날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고 누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분별력이 없게 됩니다. 자제하는 것이 사라지게 되고 자기 속에 있는 본성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취함과 방탕은 윤리와 도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때에 대한 감각이 없이 세상에서의 자기 인생에만 몰두한 채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제아무리 훌륭한 도덕군자라 할지라도 마지막 때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이 산다면 그가 곧 술 취한 자고 방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심판을 증거 하는 도구로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금과 빛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16절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때를 악하게 보게 됩니다. 때가 악하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처럼 심판이 마땅한 것이 때가 악한 세상에 정해진 날입니다.

 

 

이처럼 때의 악함을 악함으로 보게 되는 것이 지혜 있는 것이고 악한 때에 그리스도를 아는 앎이 주어지고 심판이 마땅한 자신이 진리의 길로 인도 받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신자에게서 나와지는 것이 찬송과 감사의 노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세상 것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형편의 좋음 나쁨과 상관없이 온전히 악한 때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모든 날이 감사와 찬송의 날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며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은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방언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말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방언과 함께 병 고침의 능력이 주어지고 앞일을 알고 예언을 하게 된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을 그런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믿음을 차별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차별되고 병 고침의 은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차별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게 된 성도의 모임, 즉 교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은 오직 성령으로 사는 삶을 뜻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스스로가 다스려지며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루하루를 살게 하고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때문에 성령 충만한 신자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인생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삶에 목적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의 신자들은 쉬운 인생을 원합니다. 힘들지 않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형통의 인생을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쉬운 인생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운 인생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봉사와 헌신을 한다 해도 그는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술 취함과 방탕에 방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능력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성령 충만을 특별한 능력이나 현상이 나타나는 상태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령 받음이나 성령 충만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일하심이나 성령의 역사를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서 성령 충만의 증거를 찾고 싶은데 특별히 나타난 현상이 없으니 자신이 성령 충만함 가운데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간섭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증거는 성령 없이는 볼 수 없는 죄를 보게 되고 죄에 대해 책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산을 바다에 던지는 능력이 있다 해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면 구원과 단절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든 병을 고치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죄를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탱되고 있는 현실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고 성령 충만입니다.

 

 

19,20절을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쉬운 일로 여겨집니까? 항상 감사하라는 것은 감사할 조건을 따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 상관없이 이미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은혜를 알지 못하며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은혜를 아는 것은 성령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것은 성령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미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기에 술 취하여 방탕하지 말고 성령 충만한 자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때의 악함을 알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마음을 두는 것이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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