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7.18 19:22

(70강) 헛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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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3-7http://onlycross.net/videos/eph/eph-050307(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설교>

 사도 바울은 6절에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말합니다.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헛된 말로 속이는 자가 있고 속는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헛된 말에 속는 것이 불순종의 길로 가는 것이고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헛된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그 말에 속지 않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점인 것입니다.

 

 

헛된 말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익이 없는 말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진리에서 벗어난 모든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서 벗어난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이 아무리 멋있고 그럴듯하게 들리고 윤리와 도덕으로 포장한 유익한 말로 들린다고 해도 결국 아무런 유익이 없는 말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유익하게 보이는 수많은 말로 가득합니다. 어딜 가도 도덕과 윤리적인 말을 들을 수가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말이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행동을 고치게 할 수 있고 좀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말도 하나님을 알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진리에서 벗어난 모든 말은 아무 유익이 없는 헛된 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말에 속습니다. 진리에서 벗어난 말이라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말이라면 모두 맞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진리 밖에 있는 세상이 헛된 말에 속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따라서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말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헛된 말이 무엇인가를 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현실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의 귀를 만족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모두 받아들입니다.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도덕과 윤리 수준의 말이라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마치 복음이 도덕과 윤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또한 도덕과 윤리적인 사람을 기뻐하신다고 믿는 것처럼 도덕과 윤리의 길로 나아갑니다. 결국 신자 됨도 도덕과 윤리가 기준 되어 판단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불순종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불순종의 아들들에 관해서는 엡 2:2절에서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한 불순종의 아들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풍조는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풍조입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돌리고 결코 죽지 않는다는 거짓 희망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바를 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풍조가 되어 세상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은 분명 헛된 말입니다. 이처럼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헛된 말을 자신을 위한 유익된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순종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순종의 아들일까요? 엡 2: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는 말씀처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의 참된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도덕과 윤리가 무슨 유익과 가치가 있을까요? 이런 말에 대해 세상은 분명 반발합니다. 도덕과 윤리가 사람을 사람 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런 유익과 가치가 없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은 믿음이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고 비도덕과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신자는 도덕과 윤리를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교회조차도 신자 됨의 가치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에 두지 않고 도덕과 윤리적인 사람 되는 것에 두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적인 말에 속고 자신이 마치 신자답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불순종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가 살렸다는 것은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살았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무엇이 허물과 죄로 죽은 나를 살렸는가에 대해서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산 자가 되었으니 산 자답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바른 삶이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 합니다. 죽은 자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하나님의 뜻은 외면하고 자기 마음에 맞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복 받는다’는 말을 좋아할까요? 그 말이 자기 마음에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리의 말씀은 부패한 우리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보다는 ‘죽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좇은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마음에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헛된 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헛된 말에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내 마음에 맞는 말이라는 함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자를 좇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나아갈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여러분의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진노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임을 말할 뿐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지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어떤 말이 나와질까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말처럼 감사의 말이 나와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형편에 있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이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의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 받은 사람들이 서로 지체의 관계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내가 열심히 봉사 했더니 하나님이 복주셨다’는 말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헛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헛된 말에 속아 자신을 근거로 한 거짓 믿음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근거로 하고 자신을 내세워 우월한 자로 세움 받고자 하는 모든 것이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불순종의 아들들로 일컬음 받는 실상임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노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신분으로 바꾸어 놓으시고 우리를 도구로 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그 뜻을 깊이 이해하시고 하나님의 그 뜻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의 삶의 방향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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