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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7 09:30

(67강) 준비하고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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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2:35-48http://onlycross.net/videos/nuk/nuk-12354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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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설교>

 

◉ 세상과 다른 그 나라 ◉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실 그 나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질서나 원칙, 또는 상식을 기준하여 예수님이 이루실 그 나라를 생각한다면 백이면 백 잘못된 나라를 상상하게 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차등 상급론이 이에 해당됩니다. 세상에서 쌓은 공적에 따라 하늘에서 주어지는 상이 다르다는 것은 행한 공적에 따라 차별 대우하는 세상 질서와 원칙에 의한 시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 질서와 원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와 원칙을 본질로 하고 있음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일찍 부름 받은 품꾼이나 가장 늦게 부름 받은 품꾼이 주인에게 동일한 품삯을 받았다는 포도원 품꾼 비유가 그 같은 사실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하여 말씀했습니다. 일한 시간에 따라 품삯에 차등을 두어 지급한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지급한 것이 곧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상에 차등이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단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질서와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 인간의 생각일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이러한 천국에 생소한 반응을 보입니다. 품삯은 일한 시간의 양에 따라 차등을 두어 지급하는 것이 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생각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품꾼이 일한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품꾼들은 하나같이 주인이 불러 주지 않으면 포도원에 들어 올 수가 없습니다. 주인이 불러 주었기에 일할 수 있고 품삯을 받아 그날의 양식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불러 주신 주인의 은혜에 초점을 두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자신이 일한 공적을 내세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러한 천국 백성으로 세상에 머물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돌아갈 본향이 어떤 나라인지는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장차 들어가 영원히 거할 천국이 어떤 나라이며 어떤 질서와 원칙을 본질로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것은 그 나라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 깨어 있지 못한 종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질서와 원칙의 나라 ◉

 

본문은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이 혼인을 하는 신랑일 수도 있고 신랑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친척이나 이웃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혼인 예식을 한 밤중에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이 할 일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종에 대해 노여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35절에서 예수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종의 모습입니다. 그냥 종의 모습이 아니라 출타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다는 것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종이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문을 열어주어야 그날의 종의 일이 모두 끝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일을 위해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6절에서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시면서 이것이 그 나라를 구하고 그 나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신자임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조금 이상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을 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종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띠를 띠고 수종을 드는 것은 종의 일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스스로 종이 되어서 종을 시중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과 주인의 자리가 뒤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질서와 원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번 종은 자자손손 대대로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고 주인은 계속 주인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지금의 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고대 사회처럼 종과 주인이라는 신분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급 사회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딜 가도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고 시중을 드는 사람과 대접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주인의 자리에서 대접을 받게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종의 자리에서 시중을 들게 됩니다. 이것이 이 사회의 질서고 원칙입니다. 그리고 이 질서와 원칙은 세상 마지막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 질서와 원칙이 단 하루라도 사라진 적이 있었을까요? 다스리는 자가 있어야 세상이 질서 있게 흘러간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 상식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의 자리가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시중드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 받는 사람, 다스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일컫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다투게 된 것 역시 예수님이 이루실 그 나라를 세상의 질서와 원칙에 의한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의 나라를 말씀합니다. 그 나라가 돌아온 주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 주인의 섬김 ◉

 

오늘 우리는 혼인집에 간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주인이 돌아와서 띠를 띠고 종을 시중드는 것처럼 종의 자리에서 섬김을 실천하라는 뜻일까요?

 

 

신자에게서 섬김이 나타나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인과 같은 섬김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속에는 종이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시중드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자녀에 대해서도 동일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과연 주인과 같은 섬김을 행할 수 있을까요?

 

 

간혹 세족식이라는 행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처럼 섬김의 본을 보인다고 하면서 목사가 교인의 발을, 또는 교인들이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모방해서 회사나 어떤 단체에서도 세족식이라는 것을 행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세상이 변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결국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날 뿐입니다.

 

 

참된 섬김은 오직 주인에 의해서만 행해질 뿐입니다. 즉 우리는 섬김을 모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섬김을 실천한다고 해봐야 일시적인 것이고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이 설사 기독교인으로 가득 채워진다고 해도 본문의 주인이 보여준 새로운 질서의 나라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질서의 나라는 우리가 실천해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은 그저 막연하게 주인이 돌아올 때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돌아와 이루실 새로운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아는 종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주인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깨어있는 것이고 이러한 종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실 새 나라가 어떤 질서와 원칙의 나라인가를 안다면 자연히 섬김 받고자 하고 주인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것은 그 나라와는 맞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섬김을 받는 자리에 앉기 위해 예수님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성공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현대 교회에서 종종 언급되는 목사의 권위주의라는 것도 새 나라에 마음을 두고 있음으로 나타나는 욕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45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종이 종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이유로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인자의 오심을 믿고 기다리시는 신자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질서와 원칙들은 새 나라가 임하게 되면 무너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앎이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자로 모이는 여러분의 관계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와 섬기는 자가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없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여러분이 세움 받은 위치는 오로지 섬김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일어나야 할 개혁입니다.

 

◉ 준비하고 기다리는 종 ◉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씀이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모든 품꾼이 동일한 삯을 받은 것이나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던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부인당하고, 오히려 자랑할 공로는커녕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던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들이 세상과는 다른 질서와 원칙으로 세워진 새 나라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가 낯설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지금의 세상 질서와 원칙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이 대접 받고 종이 시중들어야 하는 세상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붙들려 있는 한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실 새로운 나라에 마음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처한 형편이 다릅니다. 세상의 질서에 따라 시중드는 위치에 있을 수 있고 대접 받는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심을 믿고 새 나라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교회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새로운 세상의 질서에 이끌려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주인이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준비하는 종이라고 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도나 성경 읽기 봉사 등이 예수님께 인정을 받게 하는 근본 이유가 아니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실 의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게 부인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세상 질서와 원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그들은 인간의 공적과 행위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고,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루실 나라 역시 그 같은 기존의 질서와 원칙이 존재하는 나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세계는 기존의 질서와 원칙이 무너진 새로운 세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세상의 주인이시면서도 피조물, 즉 종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는 것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종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한 무지한 자들을 섬기신 섬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이 의미한바가 무엇인가를 알고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된 신자는 기존의 질서와 원칙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을 진실한 종과 악한 종으로 나누어 말씀합니다. 42절의 진실한 종은 주인이 맡긴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줍니다. 반면에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며 남녀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합니다. 자신도 종이면서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악한 종은 주인이 맡긴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인 행세 하는 것에 맛 들이고 살 뿐입니다. 하지만 주인의 뜻을 안 종은 그 뜻에 맞는 길로 가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신자는 주인에게 많이 받은 종입니다. 따라서 주인은 우리에게 많이 찾으실 것입니다

 

 

. 무엇을 찾으실까요? 그것은 늘 십자가로 드러난 새로운 나라에 마음을 두고 그 나라를 구하는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심판 받을 종에 불과한 자신에게 구원의 의가 되신 예수님을 높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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