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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10:09

(70강) 사탄에게 매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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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10-17http://onlycross.net/videos/nuk/nuk-13101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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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설교>

 

선악과를 먹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순수함은 이미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인간관계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한 몸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서로 자기 유익을 구하는 존재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세상의 인간관계는 신뢰보다는 서로에 대한 불신만 높아졌을 뿐이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추구하는 일 또한 이미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은 편해졌다 할지라도 피조물로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은 불가능해진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과연 신자 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어쩌면 믿지 않는 사람과 동일하게 현실에 순응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는 삶만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그리고 복음을 과연 어떤 의미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단지 나의 구원을 위한 분으로서만 여긴다면 삶과는 단절된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목적이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삶이 기독교적인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현실에 순응하고 굴복하고 끌려가는 삶이라고 해도 기독교적인 생활이 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복음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그리스도를 찾으며 복음을 대합니까? 이것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오염되고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잃어버린 채 왜곡된 삶의 길로만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본래의 자리로 찾아가기 위한 중요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본문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회당장의 분노 ◉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회당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꼬부라졌다는 것은 허리가 굽은 것을 말합니다. 허리가 굽은 것을 귀신 들려 앓은 것으로 말한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 자연적으로 허리가 굽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해하자면 귀신, 즉 악한 영에 억압되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허리가 굽은 것을 모두 귀신에게 억압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허리가 굽은 여인을 내세워 귀신에게 억압된 인간의 실상을 보여주시고, 그러한 인간에게 그리스도가 어떤 분으로 존재하시는지를 말씀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하시고 안수하시자 여인이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일은 귀신에게 18년 동안 억압되어 있던 한 여인을 귀신으로부터 해방시키신 은혜의 사건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회당에 함께 있던 사람들도 18년 동안 귀신에 의해 허리가 굽어 고생한 여인을 위로하고 허리가 펴진 것을 축하하며 여인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에 분을 내며 반대하고 무리들을 선동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회당장입니다. 이 사람은 무리들에게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안식일만 지나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엿새라는 기간이 있으니 그때 여인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회당장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회당장은 여인의 병을 고쳐준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18년 동안 꼬부라진 상태였다면 하루 뒤에 고침을 받는다고 해도 여인에게는 고마운 일입니다. 병이 치료되는데 하루를 못 기다리겠습니까?

 

 

그렇다면 안식일을 어겨가며 여인을 고쳐주는 것보다 안식일이 지나서 고쳐주면 안식일도 지키고 여인의 병도 고쳐주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회당장의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논리입니다. 아마 회당의 무리들도 회당장의 말에 동의를 했을 것입니다.

 

◉ 외식 ◉

 

하지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심으로 회당장을 외식하는 자로 규정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것은 회당에 함께 있던 무리들이 회당장의 말에 동의했음을 의미합니다. 외식하는 자라는 것은 ‘위선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왜 회당장과 그의 말에 동조하는 무리들을 외식하는 자로 규정하실까요?

 

 

예수님은 15,16절에서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의 질병을 고쳐준 것을 안식일에 일한 것으로 여기며 분을 낸 사람들이 정작 자기들은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끌고 가서 물을 먹였음을 지적합니다. 즉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례를 그들도 어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끌고 가서 물을 먹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 안식일에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한 거리 안에서 끌고 가 물을 먹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들은 안식일을 어긴 것이 아닌 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정한 규례 안에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외식하는 것으로 비판하십니다. 왜냐하면 마 23:24절의 말씀처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것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이라고 해도 소나 나귀를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는 것을 허용한 것은 자기 소유인 소나 나귀가 물을 먹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기 소유인 소나 나귀를 아끼기 때문에 허용 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소나 나귀의 고통을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안식일에도 외양간에 매인 줄을 풀어 주는 것을 허용했다면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여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합니다. 회당장과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소나 나귀의 고통은 생각할 줄 알면서 정작 아브라함의 딸의 고통은 외면하고 예수님께 분을 내는 것을 외식하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말에 따라 예수님의 일을 반대 했던 사람들은 부끄러워합니다. 아마 자신들의 위선을 깨닫고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 안식일의 의미 ◉

 

회당장은 안식일이라는 규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안식일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여인을 고치시는 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려 앓음으로 허리가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것을 사탄에게 매인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인을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주심으로 안식일의 의미를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18년간 사탄에게 매인 여인을 예수님이 풀어 주었다는 것은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여인을 사탄에게서 풀어 줄 수 없었음을 뜻합니다. 즉 사탄에게 매인 여인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처럼 사탄에게 매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요? 분명 예수님만이 나를 사탄에게서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자신을 여인과 동일하게 사탄에게 매인 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허리가 꼬부라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를 정상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가 바로 회당장이고, 회당에 함께 있던 무리들이며 오늘 우리 자신들이기도 합니다.

 

 

회당장은 자신이 여인과 동일하게 사탄에게 매어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회당장은 외식하는 자였고 그것이 곧 사탄에게 매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여인이 사탄에게 매어 있는 상태는 허리가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회당장의 매임은 마음이 꼬부라진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꼬부라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에서 자비를 보지 못하고 자신은 여인과 달리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생각하면서 규례를 따지고 규례를 내세워 분을 내는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할 때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당시 만나를 먹게 하시면서 육일 동안은 거두되 칠일 째는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육일 째는 이틀의 양식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즉 만나는 단지 육신을 배부르게 할 먹을 것이 아니라 안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여 기뻐하고 영광 돌릴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뻐하시며 칠일 째 안식하신 그 안식에 참여할 존재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상태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기 몸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나은 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사탄에게 매인 인간의 상태입니다. 즉 마음이 굽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에게 매인 인간은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을 해방시키시고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따라서 여인을 풀어주신 일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신 생명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늘 자기 몸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인간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안식일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이 회당장이었습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안식일을 주신 취지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사탄에게 매인 여인에게 자비를 베푸심으로 안식일의 정신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에게 분을 내는 것이야 말로 외식하는 것이고 사탄에게 매임으로 마음이 굽어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 회당장의 착각 ◉

 

이러한 사람에게 자신을 살리는 양식은 예수님에게서 베풀어지는 자비입니다. 사탄에게 매인 자신을 풀어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생명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안식일의 진정한 뜻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자신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없는 인간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대하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없는 인간,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간이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백성, 신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사탄에게 매인 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시는 자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가 여인을 사탄에게서 해방시켰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일한 것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굽은 마음이고 이러한 마음에서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어 허리가 굽은 상태로 고통의 세월을 지냈던 여인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인은 사탄에 의해서 허리가 꼿꼿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인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그처럼 사탄에게 매임으로 마음이 굽은 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생명은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자비하심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사탄에게 매인 마음이 굽은 자임을 알지 못한다면, 즉 나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소경된 상태에 있다면 그런 나에게서 나올 것은 비판뿐입니다. 이것이 외식하는 것이고 종교인의 모습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사탄에게 매인 비참한 처지만 보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상대방의 죄를 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나 또한 예수님이 필요한 사탄에게 매인 자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내세우며 살았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하지만 십자가를 안다는 그것조차도 의의 도구로 삼고,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를 사탄에게 매인 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만나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에 눈을 뜨게 되며 예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길로 인도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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