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6.13 17:33

(65강) 도둑질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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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5-3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2532(3).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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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

 

오늘은 28절의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교회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도둑질을 한다 해도 극소수에 해당될 것이기에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할 말로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앞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도둑질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기에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28절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 나는 도둑질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인정보다는 ‘나는 도둑질을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앞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그런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나는 살인 한 적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고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결국 성경을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과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나누면서 해당되는 말씀만 적절히 지키면 된다는 방식으로 흘러가기 십상인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하고 그 사랑으로 감사하고 찬송케 하는 것이 성경이 목적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어떤 성경 말씀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신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덕목을 지켜서 신자답게 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이 자신의 죄에 대해 외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외면할 것이기에 그가 말하는 은혜와 사랑과 십자가 모든 것은 본질에서 멀어진 형식일 뿐이라는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도둑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당시 에베소 교회에 도난 사고가 잦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도난 사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도난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에베소 교회가 교회 아닌 것이 아니고, 도난 사건이 없이 구제에만 힘썼다고 해서 그 또한 교회라는 증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면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처럼 바울이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지체의 관계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무엇을 하는 것으로 교회됨이 증거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무엇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확증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교회의 충만이 되는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는 것으로 영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현대 교회는 교회에 대한 오해가 너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교회됨이 무엇인가 보다는 사람이 목적하는 교회 만드는 일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복음보다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에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방법론들이 교회를 장악한 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지체가 될 대상을 내가 선별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루신 관계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 조건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지체로 묶이게 됩니다. 때문에 지체의 관계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허물과 죄로 죽은 불순종의 자녀로 출생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서 실수가 보인다 해도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간섭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의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고백이 있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인 것입니다.

 

 

28절의 내용도 지체가 됨이라는 말씀을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도둑질을 남의 물건을 훔친 것으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십계명의 “도둑질 하지 말라”계명 역시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둑질은 내 소유가 아닌 것을 몰래 가져와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도둑질은 애당초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자기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을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인간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왔습니다. 그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것은 그들의 힘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산다면 비록 자신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내 소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이웃의 관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어떻게 드러날까요? 하나님이 있게 하신 고와 과부와 같은 약자를 무시하고나 억압하지 않고 자신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관계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내가 힘써서 벌었다는 이유로 내 수중에 있는 것을 내 소유로 여긴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것은 도둑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나의 소유로 간주하고 있으니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이고 28절의 도둑질 하지 말라는 의미는 그런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둑질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내게 있는 소유를 자랑하고 비교하면서 타인보다 더 많은 소유를 가졌다는 것으로 우월감을 갖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다가 내 것으로 삼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도둑질 하지 말고’라는 말은 ‘너의 소유는 없음을 알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소유의 문제를 생각하면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던 모든 말들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수중에 있는 것을 당연히 내 소유로 간주하면서 은혜를 말했고 죄인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죄인이라는 말 자체가 ‘나의 소유는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죽은 자를 뜻합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소유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죄인이라고 하면서 죄인의 흉내만 냈을 뿐이고 사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소유로 인해 울고 웃고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비교하면서 살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교회에서 사람을 대할 때도 소유가 많은 자와 적은 자에 따라 차별적인 모습을 은연중에 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의 소유는 없습니다. 무엇 하나 내 수중에 있는 것을 내 힘으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내 힘으로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소유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빠지는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의 소유가 없음을 아는 것이 진짜 무소유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번 재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를 힘쓰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제는 나의 소유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제의 대상이 있게 하시고 구제하라고 하시는 것은 내 수중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구제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된 것임을 확인하라는 취지로 요구되는 것이고 이러한 구제의 정신이 살아있는 관계라면 구제 하는 자와 구제를 받는 자의 차별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구제는 돕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의미로 흩어 버리는 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지체의 관계로 함께 하고 있는 교회임을 사도는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것도 비록 내가 수고하여 내 수중에 있게 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아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자기 소유를 쌓기 위해 일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허락하심으로 나의 수중에 머물게 된 것일 뿐이기에 소유의 많음으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적음으로 인해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의 관계로 모이는 교회 됨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로 신비함과 존귀성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를 우리 스스로 멸시하고 가볍게 여긴다면 그것이 곧 십자가를 멸시하고 우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교회에서 신자의 교제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지체의 관계에서 오직 복음으로 인한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됨에 뜻을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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