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5.06.20 18:53

(66강) 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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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9-32http://onlycross.net/videos/eph/eph-04293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설교>

 

29절을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합니다. 누가 들어도 이웃을 분노하게 하는 욕이나 험담과 같은 더러운 말은 하지 말고 칭찬하고 기분 좋게 하는 선한 말을 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을 잘하자는 교훈적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데 성경은 그런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9절이 좋은 말을 하라는 교훈적 취지의 내용이라면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는 25절의 내용과 중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5절도 29절도 우리에게 언어 순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이든 선한 말이든 또한 거짓을 말하든 참된 것을 말하든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관계에 묶여진 존재로 바라보는지가 말을 통해 드러나고 증거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는 말씀에 중점을 두고 본문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방인의 관계는 혈연, 학연, 지연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관계는 지체라기보다는 세상의 공통적 조건에 의해 묶여진 관계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말하는 ‘우리는 하나’라는 관계는 서로를 잘 알고 인정하는 친분으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고, 그 친분이 깨어지면 같은 편이라는 관계는 한 순간에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체는 세상의 관계와는 달리 세상의 공통적인 조건과 상관이 없고 같은 편이라는 인간적 관계와도 무관합니다. 또한 지체의 관계는 친분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묶여있기에 지체의 관계에 있는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친분의 관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으로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관계로 묶으셔서 서로를 지체가 되게 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증거하는 증거물로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홀로 자기의 힘으로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무능한 존재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인도 받으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가고 있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은혜 아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로 묶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지체는 은혜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체는 서로 하나님의 은혜로 교통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고 그 같은 사실이 말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는 서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러운 말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 교회입니다.

 

 

더러운 말이 어떤 말인지는 본문에서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모든 것이 더러운 것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자신을 나타내고 자기를 증명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세우고자 하는 모든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세우고자 하고 자기 정당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말들이 더러운 말인 것입니다. 자기 정당성을 나타내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부당함입니다. 즉 상대를 무너뜨리고 대신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더러운 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말로는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늘 정당하고 옳은 자로 서 있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는 ‘나는 죄인임을 고백하기 때문에 옳은 자다’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고 속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세우며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교하는 관계로 전락되고 그 속에서 악하고 더러운 말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신의 죄인 됨을 진심으로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십자가를 말하고 은혜를 말하는 우리가 어떤 길로 가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복음을 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당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미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말이라면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은 당연히 자신은 부인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높이는 말일 것입니다. 이처럼 지체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하는 말은 은혜를 끼치는 선한 말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두십시오. 복음을 안다고 해서 그 복음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옳은지를 생각하십시오. 누구든 복음을 알았다면 그는 자신이 죽은 자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자는 복음을 내세워 자기 옳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복음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이용하여 자신을 세우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멋있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더러운 말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가운데 옳고 정당한 사람은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옳은 자이고 누가 잘못된 자인지 하나님께 나아가 판단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뭐라고 선언하실까요? 누군가보다 행동이 조금 나아보인다고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그 또한 더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선언 앞에서는 누구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동일한 신분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우리가 서로 이러한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복의 관계에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입니다. 서로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세상의 관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고 관심도 없는 내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체로 함께 하는 관계에서 여러분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잘해줘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설령 나에게 가시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통하여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다듬어져 가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모든 사람이 내편 되어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가득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허망한 생각입니다. 내가 잘해 줬으니 저 사람도 나에게 잘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물론 헛된 기대입니다. 사람에게 좋은 말 들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나아질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채우고 충만하게 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것으로 감사하며 살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은혜로 여러분 자신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여러분으로 인해서 나타나고 증거되고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께 주어진 역할입니다.

 

 

신자는 서로 은혜를 끼쳐야 할 관계에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설령 나를 험담하고 욕을 했다 하더라도 은혜를 끼쳐야 할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내가 과연 십자가 은혜를 아는 신자인지, 하나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을 것이 없는 존재로 지체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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