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11.03 09:54

(142강) 나를 위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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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8: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38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4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5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

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7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8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설교>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죄문제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죄와 연결되어 있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 또한 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는 그것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다른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즉 ‘인간은 죄인이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감사와 찬송이 있게 합니다. 때문에 죄 문제를 간과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은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육신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은총을 생각했다면 시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만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육신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문제가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육신의 모든 문제도 분명 하나님의 다스림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잘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도 뜻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육신의 문제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고 붙들어 놓기 위해 활용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산다, 못 산다는 것을 하나님의 복과 사랑으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복과 사랑을 자신이 처한 육신의 문제나 환경을 기준으로 하여 이해하게 되면 순전히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찬송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도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1절)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신들 앞에서’라는 표현입니다. 알다시피 우리에게 신은 하나님 한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상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모두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 창작되어진 가상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시편 저자는 마치 여러 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신들 앞에서’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신적인 자리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있습니다. 돈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돈은 이미 신적인 존재입니다. 돈을 힘으로 여기고 돈에 지배를 받음으로 돈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결국 돈으로 인해 신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돈이 사람을 주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신들 앞에서라는 말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외에 신처럼 섬기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일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마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구출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신은 하나님 한분뿐이다’는 뜻의 계명입니다. 즉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명이 아님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돈이 있고 건강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세상이 신처럼 여기고 의지하는 신들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일을 선하고 인자하신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주를 향한 감사와 찬송임을 알아야 합니다. 돈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현실에서 돈과는 무관한 채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만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1절의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들 앞에서 주께 감사하지 않고 찬송하지 않는 우리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을 신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조차도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뜻을 이뤄주고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우상과 같은 존재로 인식할 뿐입니다.

 

 

이것이 신앙을 말하는 우리의 현재적 실상임을 인식할 때 2절의 말씀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2절)는 말씀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아닌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은 주의 이름에 감사한다는 고백은 현대인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어 흘러가고 있는가를 알게 합니다.

 

 

주의 인자와 성실은 성전을 향한 예배와 연관됩니다. 성전을 향한 예배는 거룩한 제물의 피로 인해 인간의 죄를 덮으시는 인자와 자비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감사와 찬송은 세상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신의 악함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는 돈도 건강도 권력도 아니라 나의 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다’는 것은 주의 말씀이 주의 이름보다 더 높다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인해서 주의 이름이 증거 될 수 있기에 말씀을 높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주의 이름이 의미하는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기 위해서 말씀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악함을 보게 되지만, 세상이 좋다고 여기는 것, 신처럼 생각하는 것 앞에서 서게 되면 늘 자신의 초라함만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고 찬송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은 돈을 힘으로 생각하지만 신자는 돈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강한 자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3절)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이러한 강함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지 세상의 것으로 인한 강함을 위해 간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뢰할 때 신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설령 현재의 형편이 힘들다고 해도 그 또한 자신을 의로 인도하시기 위한 다스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4절의 말씀처럼 주의 입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왕들조차 감사해야 할 만큼 복된 것입니다. 왕은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왕들도 감사해야 할 만큼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복된 은총인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의 세계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8절의 말씀처럼 나를 위한 보상은 주의 인자와 성실을 알게 하시고 그로 인해 감사하는 복된 세계를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보상 또한 우리의 잘함에 대한 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다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보상으로 감사하고 찬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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