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11.24 10:12

(144강) 구원의 능력

조회 수 374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 140:1-13http://onlycross.net/videos/psa/psa-14001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2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셀라)

4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포악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들은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5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셀라)

6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8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 (셀라)

9 나를 에워싸는 자들이 그들의 머리를 들 때에 그들의 입술의 재난이 그들을 덮게 하소서

10 뜨거운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그들로 하여금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11 악담하는 자는 세상에서 굳게 서지 못하며 포악한 자는 재앙이 따라서 패망하게 하리이다

12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13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설교>

 

본문은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1절의 내용을 보면 다윗을 해하고자 하는 세력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사울로 인한 고통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께 탄원하는 시를 대할 때 쉽지 않은 것은 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에 참예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저자가 겪는 고통의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황을 두고 본다면 저자와 우리는 동일한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저자가 고통을 겪는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보다는 훨씬 나은 편안한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자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부터 공감대가 없기 때문에 본문과 같은 내용을 대하면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기 십상입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겪고 있는 상황을 단지 육신의 문제로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고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다윗을 해하고자 하는 악한 세력은 결국 다윗이라는 한 인간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택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다윗을 해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 자손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실 메시야를 보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저자의 상황은 오늘 우리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자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거저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악한 세력은 이것을 훼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미혹하여 흔들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신자는 저자와 동일하게 악한 세력에 의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이 같은 악한 세력의 시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고통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기에 세상을 도구로 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흔드는 악한 세력의 활동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악인의 활동을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2,3절)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속으로 악을 꾀한다는 것은 악이 그 마음에서부터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악은 행동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권세로 자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마음에 악이 권세로 자리하여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서는 선이 나올 수 없고 늘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해 매일 모이고 그 혀나 입술에 또한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저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를 내세워서 선이 아니라 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증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말하는 악인에게서 우리 자신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외적인 행동은 그럴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마음속에는 늘 악을 꾀하고 있고 혀와 입술 또한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수단으로 부지런히 사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신 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신자는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신자라고 이름하는 우리가 신자의 본분을 따라 사는 것을 기뻐하기보다 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에 더 매진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과 이름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을 해치는 말을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러한 악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 자신은 그 악의 세력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훼방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에게는 이 같은 현실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도 그것이 악에게 끌려가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인 줄도 알지 못한다면 저자의 고통에 참예할 수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알지 못하고 자기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그것을 신앙의 열심으로 간주하며 당당하게 복을 구하는 종교의 길로만 갈 뿐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포악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들은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4절)는 저자의 간구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외적인 현실에만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돈 문제, 자식 문제, 생존 문제로 인한 염려와 근심만 마음에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이 우리 현실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나를 지키시고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야 말로 자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신자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을 보면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그들이 스스로 높일까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악인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되어 인자와 자비하심과도 상관이 없게 되고 결국 죄의 삯인 사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 자신에게서 악을 보면서도 악의 세력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마치 악의 세력과는 무관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고 있고 그로 인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용서를 받았으니 더 이상 악의 세력에 대해서는 관심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권세로 작용하는 악에 대해 무관심한다면 관심은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뿐입니다. 결국 악이 꾀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악에 대해 무관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말하고 용서를 말하되 실제로는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고 즐겨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을 감지할 때 실감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무능함입니다. 악의 세력을 대적할 수 없고 결국 실패할 수 없는 무능을 알 때 비로소 7절의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인간의 신체에서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친히 악의 세력과 싸우심으로 나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악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능력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는 악에 대한 무능을 절감할 때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며 구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는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붙들려 있습니다. 나의 악함을 알수록 구원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5 시편 시편1-76편 강해 신윤식 2018.08.13 7222
74 시편 (154강) 할렐루야 신윤식 2014.02.02 3567
73 시편 (153강) 찬양과 칼 신윤식 2014.01.26 3270
72 시편 (152강) 찬양 받으실 이 신윤식 2014.01.19 3275
71 시편 (151강) 기뻐하시는 자 신윤식 2014.01.12 3063
70 시편 (150강) 여호와를 찬양하라 신윤식 2014.01.05 3231
69 시편 (149강) 위대하신 주 신윤식 2013.12.29 4049
68 시편 (148강) 복이 있는 자 신윤식 2013.12.22 3283
67 시편 (147강) 주를 사모하는 자 신윤식 2013.12.15 3414
66 시편 (146강) 피난처 신윤식 2013.12.08 3161
65 시편 (145강) 죄와 기도 신윤식 2013.12.03 3111
» 시편 (144강) 구원의 능력 신윤식 2013.11.24 3740
63 시편 (143강) 나를 아시나이다 신윤식 2013.11.10 3411
62 시편 (142강) 나를 위한 보상 신윤식 2013.11.03 3200
61 시편 (141강) 바벨론에 앉아서 신윤식 2013.10.27 3483
60 시편 (140강) 감사의 노래 신윤식 2013.10.20 3332
59 시편 (139강) 특별한 소유 신윤식 2013.10.13 3299
58 시편 (138강) 여호와를 송축하라 신윤식 2013.10.13 3533
57 시편 (137강) 연합의 의미 신윤식 2013.10.06 3563
56 시편 (136강) 여호와의 처소 신윤식 2013.09.29 36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