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12.08 10:04

(146강)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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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42:1-7http://onlycross.net/videos/psa/psa-142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설교>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신앙의 간증은 약한 처지에서 강한 힘을 얻고, 넘어졌음에도 일으킴을 받고, 힘든 문제에서도 나아갈 길이 열리는 등의 상황 변화가 첨가된 수많은 실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막힌 것이 열리고 어둠이 빛이 되고 탄식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바뀌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증거하는 그것이 간증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적인 상황변화가 동반되어야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간증의 가치가 있고 그러한 간증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는 간증할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만인 앞에 내어 놓을만한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만한 사건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건이 없는 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사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숨을 쉬며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사건에 포함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건이 없이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것으로는 하나님을 간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사건이 아닐뿐더러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생존도 믿음도 큰 가치 없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어 놓음으로써 ‘나의 믿음은 너희와는 다르고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에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간증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신자에게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워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건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의 사건이 없이 예수를 믿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건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보편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의 내용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42편은 141편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여호와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1절에서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것을 부르짖는 기도로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142편이 ‘다윗이 굴에 있을 때 지은 기도’인 것을 생각해 보면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이 굴에 있을 때라면 사울에게 쫓겨 다니다가 굴에 숨어 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141편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부르짖음은 외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는 내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리쳐서 부르짖는 것은 이러한 간절함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는 간절하게 여호와를 부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내면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소리치며 부르짖는 것은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다기보다는 기도하기 위해 부르짖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물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소리치며 기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기도의 본질은 아니며 기도의 잣대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저자는 깊은 어려움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고 말하는 것이나 3절에서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고 말하는 내용들 모두 저자가 큰 어려움에 빠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4절을 보면 저자는 어려움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의 한 몸 의탁할 피난처도 없고, 자신을 돌봐줄 그 누구도 없는 외로움의 처지에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5절)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과 함께 누구 하나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거나 도와주지도 않는 외로움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 때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막연하고 맹목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셔서 어렵고 힘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이미 자신이 가는 모든 길을 알고 계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4절에서 자신이 원통함으로 마음이 상할 정도가 되었을 때에도, 원수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을 때에도 여호와는 자신이 가는 그 모든 길을 알고 계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시는 것은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의 길을 아신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도와달라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길을 알고 계신다는 것은 나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용 아래서 주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무작정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일을 있게 하신 뜻에서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현대 교인들의 대부분의 기도가 기도의 참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부분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나 현재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이시고 인자함과 자비하심입니다. 따라서 만약 신자가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믿고, 현재의 길이 하나님에 의해서 펼쳐지는 것들이고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에 있다면 어떤 일에 주어지든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이러한 믿음 위에 있다면 어떤 일에서든 불안해하거나 염려하기보다는 선하신 여호와를 신뢰하며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자는 이러한 믿음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도와줄 누구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찾을 뿐입니다. 즉 세상의 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힘이시고 도움이시라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피난처를 찾고 피난처를 마련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험을 드는 것도 피난처를 마련하는 것이고, 노후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것도 피난처를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피난처가 든든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사라집니다. 사실 그러한 피난처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피난처를 아예 무시한 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피난처가 우리를 온전히 지켜주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피난처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피하면 하나님이 세상의 문제와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육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아무런 해를 입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노후에도 편히 살게 해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6절에서 저자는 자신을 비천한 자로 말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오늘 우리는 육신의 문제에서는 저자의 이 시편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저자와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저자의 간절함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 문제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비천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영혼 또한 죄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악한 세력은 늘 우리를 죄로 끌어가기 위해 시험하고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한 감각이 있는 신자라면 이것을 매일 실감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도울 세상의 힘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아시고 나를 도우실 힘이 되십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신자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사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나보다 강한 악한 세력으로부터 나를 건지시며 나로 하여금 주를 바라보며 의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감사하며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리 내어 부르짖는 기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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