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4.01.19 10:14

(152강) 찬양 받으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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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48:1-14http://onlycross.net/videos/psa/psa-14801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설교>

 

현대인은 주어진 삶 자체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덕을 보며 살아가면서도 감사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하나님이 지으신 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를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현실의 문제로 인해 불평만 가득합니다. 그런 우리에게서 무슨 감사를 기대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변의 사물이나 이웃들을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지를 계산하며 외면할 것과 가까이 할 것을 구분하여 대하는 일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 조차도 손익을 계산하며 이익이 되는 것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여깁니다. 그로 인해 작은 일에서는 아예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마치 자기 힘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아마 스스로를 풍요롭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며 찬송할 수 있는 기쁨의 삶을 잊어 버린지 이미 오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접하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존재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148편도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주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점입니다. 만물더러 하나님을 찬양하란다고 해서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3절에서 해와 달과 별을 언급하고, 4절에서 하늘과 물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해와 달과 별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자도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다른 만물 또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의도로 이 시를 쓴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는 만물을 단지 자연적인 존재로만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만물을 자연적인 존재로만 봤다면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늘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 그리고 인간 모두를 언급하며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온 우주만물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찬양 받을 분은 하나님 한분뿐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 한분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당연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 외의 누구도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 홀로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고 말은 하면서도 늘 찬양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은 참된 찬양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고 말합니다. 만물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당위성은 그것들이 여호와의 명령, 즉 말씀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찬양의 이유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것은 만물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창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근거는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감사가 되고 감사함으로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존재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감사와 찬송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신 불만과 불평을 안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 우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시각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찬송은 불가하다 할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 나올 때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을 행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으심 받고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피조물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고,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 모으시고 모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모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자기 확장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모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해 버립니다. 모이게 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빈자리를 채워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아무리 찬송을 부른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면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고 말합니다.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다는 것은 세상 만물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칙이 곧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누구도 바꾸거나 폐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하신 이 명령이 폐하여 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우주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찬양의 근거입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조금 특이한 말을 합니다. 용은 계시록에서는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용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용의 찬양을 원하신다는 뜻이기 보다는 용, 즉 사단의 존재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할 근거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단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멸망을 받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입니다. 물론 궁극에는 영원한 멸망에 갇히게 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기에 잠시 보존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사단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14절에서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라고 말합니다.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심으로써 모든 성도로부터 찬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뿔을 높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심을 말합니다. 이처럼 자기 백성의 뿔을 높이시기 위해 사단도 잠시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백성의 뿔을 높이시고 모든 성도의 찬양을 받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사단의 존재도 감사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존재로 인해 죄가 드러났고,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높이시는 은혜와 자비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육신에 중점을 두게 되면 사단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왜 사단을 멸하지 않으셨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구원이라는 시각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단을 멸하신 상태에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죄를 범하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아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 명령에 의해 존재하고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존재하게 하신 분에 대해서는 잊은 채 자기 존재성을 확대하는 일에만 몰두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뤄지기를 원하기보다는 나의 뜻을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이뤄주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에게서 감사와 찬양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셔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이 점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와 근거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이유와 근거는 우리의 평생에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함없는 자기의 뜻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삶이 주어지든 그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새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는 것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위치에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1-13절에 보면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고 말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높고 낮음, 노인 아이를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만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높고 뛰어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교회라면 그 누구도 높임 받고자 하지 않고 높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높으신 분으로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의 풍조 속에서 신자가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존재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지 않을 때 만물의 존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보며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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