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12.22 10:06

(148강) 복이 있는 자

조회 수 328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 144:1-15http://onlycross.net/videos/psa/psa-14401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5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6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8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0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13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설교>

 

시편에서 하나님에 대해 자주 표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반석’입니다. 2절에서 언급되는 요새, 산성, 방패라는 단어 역시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어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든든한 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시고 요새시고 산성이시고 방패가 되신다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신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반석과 요새와 산성과 방패로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외에 든든한 힘으로 여기는 것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이것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주시고 요새와 산성이 되어 주심으로 어렵고 힘든 일로부터 지켜주시고 도와주심으로 무사하게 해주시고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평안을 위해 하나님이 반석과 산성 요새처럼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를 반석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다릅니다. 단적인 예로 여호와를 반석으로 믿는다면 여호와가 계시는 것으로 어떤 삶의 형편에서도 불안함이나 염려는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여호와가 반석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무시한 상태에서의 말일 뿐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나의 반석이라고 하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절에 보면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고 말합니다. 싸우게 하시고 전쟁하게 하시는 분이 반석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석 되신 하나님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일이 전쟁인 것처럼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을 때 겪게 되는 것은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쫓아내며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않아야 할 자로 부름 받은 것처럼 신자 또한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무시하고 보이는 세상의 것으로 자기 힘을 삼고자 하는 세상에서 여호와가 나의 반석이라는 고백으로 사는 것이 신자라면 충돌과 함께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늘 싸우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싸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자가 가야 할 길에 뜻을 두기보다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자기 평안을 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것은 여호와가 반석이시고 요새시고 산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육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육신에 전혀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영광도 구하지 않으면 오로지 보이지 않는 세계인 의의 나라만 소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육신을 온전히 내려놓기 보다는 끊임없는 집착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한 채 세상이 가는 길로 붙들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승리는 여호와께 있음을 절감하며 여호와만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를 나의 반석, 산성, 요새, 방패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벗어나야 할 곳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여호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자기 삶의 문제로만 찾을 것입니다. 자기 삶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대로 인간은 헛것 같으며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덮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헛것 같고 그림자와 같은 인간을 주께서 알아주시고 생각하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헛것 같은 인간을 알아주셨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시고 알아주셨다’고 할 만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주시고 생각하신 일은 헛된 존재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인자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고 알아주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고 복된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된 사람이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며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 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복을 입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복을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에 대한 평가는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떨친 자라 할지라도 헛되다는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잠시 후면 사라질 육신일 뿐이기 때문에 그림자 같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존재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복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절에 보면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다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베풀어지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베풀어지는 은총들이야 말로 세상에서는 살 수 없고 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한다는 것은 아무나 부를 수 없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된 사람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신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의 조건과 상관없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컬음 받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나의 반석으로 고백하는 신자라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의미 없는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5 시편 시편1-76편 강해 신윤식 2018.08.13 7259
74 시편 (154강) 할렐루야 신윤식 2014.02.02 3568
73 시편 (153강) 찬양과 칼 신윤식 2014.01.26 3272
72 시편 (152강) 찬양 받으실 이 신윤식 2014.01.19 3276
71 시편 (151강) 기뻐하시는 자 신윤식 2014.01.12 3065
70 시편 (150강) 여호와를 찬양하라 신윤식 2014.01.05 3232
69 시편 (149강) 위대하신 주 신윤식 2013.12.29 4054
» 시편 (148강) 복이 있는 자 신윤식 2013.12.22 3285
67 시편 (147강) 주를 사모하는 자 신윤식 2013.12.15 3417
66 시편 (146강) 피난처 신윤식 2013.12.08 3162
65 시편 (145강) 죄와 기도 신윤식 2013.12.03 3113
64 시편 (144강) 구원의 능력 신윤식 2013.11.24 3743
63 시편 (143강) 나를 아시나이다 신윤식 2013.11.10 3415
62 시편 (142강) 나를 위한 보상 신윤식 2013.11.03 3204
61 시편 (141강) 바벨론에 앉아서 신윤식 2013.10.27 3487
60 시편 (140강) 감사의 노래 신윤식 2013.10.20 3336
59 시편 (139강) 특별한 소유 신윤식 2013.10.13 3305
58 시편 (138강) 여호와를 송축하라 신윤식 2013.10.13 3537
57 시편 (137강) 연합의 의미 신윤식 2013.10.06 3572
56 시편 (136강) 여호와의 처소 신윤식 2013.09.29 363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