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8.05 16:31

(82강) 기이한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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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78: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78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설교>

 

신앙이 깊다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신앙이 깊다는 것은 행위적인 의미가 아니라 앎의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말입니다. 즉 행함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것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 앎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하심의 의미를 알고, 그 앎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 참된 앎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기억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과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이것이 말로 깊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물론 성경을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일을 만날 수가 있고, 그 일들은 이미 우리의 머리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도, 바벨탑 사건도, 홍해를 가르신 사건 등등 우리의 머리에는 성경에서 배운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적 사건들이 기억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성경 지식일 뿐이기에 앎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아 홍수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삶을 점검하고, 바벨탑을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판단하고, 홍해 사건에서 우리가 나아가고 추구해야 할 문제를 생각하며 스스로에 대해 비판하고 참된 진리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것이 곧 참된 앎이며 깊은 신앙인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그들의 역사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은 단지 과거에 행하신 역사적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일로 존재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베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사적을 베푸신 그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과거에 행하셨던 기이한 사적들이 현재에도 베풀어진다면 이스라엘은 환난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환난에 빠지게 되면 기이한 일을 행하심으로 그들을 건져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을 원했고, 오늘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도 이런 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의 기적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기적들은 말 그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으로만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망 하는 것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에 어떤 기적을 행하실 것을 말하면서 거기에 희망을 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행하신 일을 전함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고, 그 앎의 시각에서 현재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이스라엘이 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기 때문에 사실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신앙과 흔히 생각하는 신앙의 의미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크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삽이 78편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기이한 사적들은 말 그대로 기이한 기적의 일들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지 않았다는 아예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에 대한 지식적인 기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잊고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과 홍해가 갈라진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여리고 성을 허물고, 가나안의 힘센 민족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기업을 받은 모든 일들을 낱낱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같은 하나님이 일을 아예 경험하지 못한 사람처럼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기억력이 나빠서일까요? 하지만 이것은 기억력과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아삽이 말한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은 아삽이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조상 때부터 전해 오던 것들입니다. 즉 마치 옛날 얘기 식으로 들으면서 배워왔던 것들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오래전 옛날이야기로 치부하기 때문에 기이한 사적들에 대해 그 마음이 희미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애굽을 직접 경험하고 기이한 사적을 체험한 당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원망했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희미해진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문제에 직접적인 체험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역시 성경의 내용들이 내 삶의 내용으로 와 닿지 않는 것도 직접적인 체험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들은 이스라엘의 삶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해서 그들이 접하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본질은 그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본분이 무엇이며, 자신들의 삶 또한 어떤 방향으로 인도 받고 있는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이 어떻든 실망하기보다는 지금의 삶에서 자신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더 깊은 마음을 두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을 알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앎으로 나타나는 깊은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에 치이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신자의 본분이 무엇이며 신자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망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에 대해 희미해질 수 있고 아예 잊어버린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아삽이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이유를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잊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을 잊어버리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잊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힘으로 여기기 때문에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줄 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주는 신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정성과 열심이라는 조건이 요구됩니다. 은혜 또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 것은 하나님의 기이한 사적을 잊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사적은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거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말고 얘기할 수 있는 기이한 사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이 되는 기이한 사적은 십자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의 사건도 십자가 사건 앞에서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세계에 속한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 같은 기이한 사적을 행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모든 인생을 붙드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이 같은 일하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자신을 어떤 은총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실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신자는 지금의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앎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말씀을 우리에게 이러한 앎의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고, 성령은 그 같은 세계를 보도록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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