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8.12 12:49

(83강) 주의 이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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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79:1-13http://onlycross.net/videos/psa/psa-7901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설교>

 

시편 79편은 시편 속의 애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슬픈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주로 감사와 기쁨의 노래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시편임을 생각해 보면 왠지 시편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분위기가 암울합니다.

 

 

79편도 77,78편에 이어서 아삽이 쓴 시인데 그 내용들이 환난에 대한 것으로 가득하고, 오늘 79편도 이방민족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짓밟히는 것을 두고 노래한 것을 보면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이 환난으로 끝나고, 슬픔이 슬픔으로 끝난다면 성경, 그리고 시편으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삽의 시를 보면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희망과 소망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내용이 예루살렘이 황폐화 된 것으로 시작하고 이스라엘이 겪은 비참한 상황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그 마지막은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는 말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을 반전시키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슬픔으로 시작한 노래가 감사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삽이 과연 무엇을 근거로 해서 슬픔의 상황에서 감사를 얻게 되는지에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기쁨으로 가득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때로는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시편을 쓴다고 해도 그 시작은 슬픔과 탄식과 호소일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를 슬퍼하게 하고 탄식하게 하는 삶이 앞으로도 어떻게 얼마나 전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로 인해서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아삽이 비참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감사의 노래를 하게 되는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슬픔의 자리에서도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4절까지를 보면 ‘지금 우리 사정이 이렇습니다’라고 호소하는 탄원의 내용입니다. 이방인들이 자기 민족의 시체를 새의 밥이 되게 하고, 땅의 짐승에게도 주었다고 합니다. 피가 예루살렘 사방에 물같이 흘러도 시체를 매장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난 살육이 벌어진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참혹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렘 7:33절에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이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겪게 될 환난에 대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아삽이 호소하는 환난은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환난에 대한 내용이 등장할 때 대개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환난에서 구출해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잘못된 신앙으로 징계를 받아서 환난에 처해졌지만 환난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이 환난을 물러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뻔한 스토리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삽의 시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황의 반전이 없습니다. 77편도 보면 아삽이 환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이 듣지를 않으면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다고 말합니다.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고 기도했지만 아삽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삽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더 많이 기도해서 기어코 응답을 받았습니까? 아삽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아삽이 깨닫게 된 자기 잘못은 하나님이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79편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벨론으로 인한 환난과 고통은 계속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원히 주께 감사하는 노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의 상황에서도 영원히 주께 감사하는 노래를 할 수 있게 한 비밀은 13절의 앞 구절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라는 내용에 있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비록 유다가 이방 나라로 인해서 극심한 환난을 겪으며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즉 환난이 더 이상 유다가 주의 백성이 아니고 주의 목장의 양이 아니라는 증거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삽으로 하여금 슬픔의 노래가 감사의 노래로 끝나게 하는 힘이고 근거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신자가 환난과 어려움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환난에서 건짐 받는 것에만 마음을 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백성이고 주의 양이라면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생각에 우리를 환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감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거의 모든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의 포로생활을 하다가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험악한 세월을 지내면서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겠습니까?

 

 

우리는 유다가 겪는 그 모든 일들이 그들의 죄 때문이라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다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유다를 환난의 길로 밀어 넣으신 하나님의 의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다의 죄는 이방 신을 끌어 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이방 신을 끌어 들인 것은 자신들의 삶을 형통하게 해줄 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삶의 형통에서 신의 함께 하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라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롬 8: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는 말을 합니다. 어떤 환난과 박해와 기근과 위험 속에서도 불변의 사실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환난에서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만약 문제 해결에만 매달리게 되면 실망과 낙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기회도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를 조롱을 받는 상황까지 나아간다고 해도 신자가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힘들 때는 슬퍼하기도 하고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사실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난과 힘든 일에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선이 있음을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아삽의 이 기도는 ‘우리가 힘드니까 구원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 우리를 건지시고 죄를 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조롱을 받고 있으니까 자신들을 건지심으로 주의 이름이 증거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주의 이름이 증거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백성이고 주의 목장의 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 일에 참여된 것이 주의 백성, 주의 목장의 양으로 부름 받은 신자입니다.

 

 

주의 이름의 증거를 위해서 때로는 자기 백성을 어려움과 환난의 길을 걷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자기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욱 깊은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그 관계에 확고히 자리할 때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고 영원한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신자는 주의 백성이고 주의 목장의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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