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8.26 13:00

(85강) 하나님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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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1:1-16http://onlycross.net/videos/psa/psa-81011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2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3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

4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5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6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15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16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설교>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구원 받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자가 어떻게 구원 되었는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 종교에 있어서 구원은 철저히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불교에서의 구원은 곧 해탈을 의미하는 것인데 해탈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정진하여 도를 깨닫고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결과입니다. 때문에 불교는 자신을 구원한 부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로 이루는 구원이기에 도를 깨달은 개인의 공로가 되는 것으로 기독교의 구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구원이든 복이든 자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이룰 수 있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곧 기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종교의 길로 가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뭔가 되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마음을 두고 그 은혜와 능력에 감사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에게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신앙심이 있어서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구원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서게 되면 자신의 의와 공로와 조건들 모두를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신 일만 증거하며 높이게 됩니다.

 

 

81편도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1절)라며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2,3절의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라는 내용을 보면 뭔가 평화로움을 연상하게 합니다. 시대가 평화롭고 생활이 안정된 삶의 여유에서 이런 기쁨의 노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사실 신앙생활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느냐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팍팍한데 하나님을 믿을 여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등장하는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대하면 마치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81편은 아삽의 시이고 아삽이란 인물은 이미 앞에서 살펴봤던 시편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태평성대를 누렸던 인물이 아니라 심한 고난과 환난을 겪어야 했던 시대의 인물입니다.

 

이것은 13,14절의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라는 구절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수와 대적들로 인해 고난과 고통을 겪는 상황에 있던 것이 아삽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인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삽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연결하여 이해했음을 의미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삽이 기억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1절에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고 말하는 것도 애굽의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노예로 고생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을 두고 찬양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할만한 조건을 주셨기 때문에 찬양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현재의 삶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출애굽 사건과 현재의 삶을 별개의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과 환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찬송할 수 있게 한 힘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믿음의 시각으로 현재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삽에게는 현재의 삶이 어떻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셨고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므리바 물가에서의 시험은 이스라엘을 마실 물이 없는 환경으로 인도하셔서 여전히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매여 있는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9절에서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는 것도 단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라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록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다른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만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삽의 믿음이었고 이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의 노래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이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시고, 그 피가 우리를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게 하시고 자유로운 자가 되게 하셨음을 믿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신 바로 그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과 환경에 처해진다고 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동일하신 분이며 여전히 나 같은 자를 죄에서 구원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같은 믿음이 환경과 형편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며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외적 조건과 무관한 기쁨이며 찬양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에게는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구원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11,12절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는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과 환난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신을 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완악한 마음이라고 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 임의대로 행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어버려 두신 것이고 내어버려 두심이 곧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임의대로 행하게 하셨을 때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김으로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이 없는 어둠의 시대로 깊숙이 빠져들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13절)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어둠과 절망을 경험하게 하시고 부르심으로써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힘이고 소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에 묻혀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주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기억함으로써 아삽처럼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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