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9.30 09:44

(89강) 주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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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5:1-13http://onlycross.net/videos/psa/psa-8501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설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설교를 듣고 성경을 봐왔던 신자들은 ‘매너리즘’(틀에 박힌 태도나 방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계속 반복되는 설교로 인해서 설교에 대한 의미를 잊어버리고 단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 때문에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사라지고 설교를 위한 설교로 흘러간다면 그것이 곧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십자가 은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용서, 믿음 등의 말에 대해서 흥미가 없고 뻔한 이야기로 식상하게 들리신다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일컫는 것은 신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또 우리가 지금껏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계속 들어왔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식상한 말로 들으면서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는 모습이냐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이라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본질적인 의미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말과 삶이 서로 다른 이중적인 모습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인간의 열심에 초점을 두겠습니까? 적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초점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두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인간의 행함에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가 과연 무엇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께 나오는 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인 것이지 결코 식상하거나 뻔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도 뻔한 내용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 역시 우리 믿음의 현주소를 보게 합니다. 이 말씀은 고난 중에 있는 자를 회복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얘기하고 있고, 이 은혜는 고난 중에 있는 신자가 신앙생활을 잘한 결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사하시고 모든 죄를 덮으신 하나님의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덮으셨다면 그것은 죄가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죄 없는 자로 보시고 분노를 거두시고 주의 진노를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행하심만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의 행하심만 높이고 찬송할 뿐 인간의 행함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실천했고 어떤 열심이 있든 그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주관하신 은혜의 결과로 받아들일 뿐이기에 ‘내가 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실질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의 현실은 구원의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인간의 행함과 열심이 강조되고 있고 인간의 행함의 여부에 의해 복이 주어지고 하늘에서의 상도 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인의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가야했던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구원의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도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심으로써 우리를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따라서 주의 구원을 믿는 신자는 죄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 역시도 여러분께는 식상한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 주의 구원을 믿고 주의 구원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신자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의 구원을 말하기는 쉬워도 구원을 믿는 자로 살아가는 문제는 만만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구원되는 문제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신자는 결코 자신의 것을 내어 놓지 않게 됩니다. 다만 내어 놓는 것이라면 자신의 무능함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주의 구원, 구원의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모든 죄를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인자를 베푸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생명으로 옮긴바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만으로도 우리의 심령은 얼마든지 충만의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의 현재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이 없고 부족함으로 인해 불만만 가득하고 속은 항상 허전한 상태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구원의 가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처한 죄의 상태의 심각성에 대해 눈이 열리지 못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것이 죄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죽음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는 죽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참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참함을 무시하기 때문에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따라서 죄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가치 또한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만족이 되지 못하는 것이고, 여전히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에 구원을 말하면서도 구원의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덮으심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된 것이고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진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은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이방의 신을 섬기면 이방인들처럼 힘과 부요가 주어질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상이 자신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힘이 있다고 믿은 것이 그들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처럼 세상의 것으로 자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의 것을 헛된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신자가 구원을 믿는다면 우리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베풀어진 것을 복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으로 인한 부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믿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주의 구원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돈으로 누리는 미래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은혜로 누리는 미래를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에 의해서만 주의 구원의 가치를 품을 수가 있습니다. 돈으로 사는 인생보다 은혜로 사는 인생을 더 크게 여기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의 현실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충만이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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