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0.07 16:09

(90강) 가난한 자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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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6:1-17http://onlycross.net/videos/psa/psa-86011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설교>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신자가 하나님을 부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하는 보편적인 기도와는 그 맥락을 달리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통상적인 기도 내용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대개 자기만족을 위해 행해집니다. 다윗의 기도에서도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라는 내용을 보면 다윗의 기도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기 처지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기도의 의미는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서 구원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다윗이 추구하는 만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기도가 우리와 그 맥락을 달리한다는 것은 우리는 육신의 만족에 초점을 두는 반면 다윗은 영혼의 만족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2절의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는 내용이나 4절의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는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기쁨이 곧 영혼의 만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 107:9절을 보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을 보면 영혼의 기쁨이나 영혼의 만족은 모두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기에 다윗의 기도는 영혼의 만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린 성경을 통해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특히 시편에서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생소한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지 않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영혼이라는 단어를 어색해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영혼이라는 단어를 육신과 전혀 다른 보이지 않은 어떤 신비적 물체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개 보면 영혼을 내게 있는 육신과 또 다른 무엇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 나온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죽은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 나오는 장면이라는 사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영혼을 육신과 또 다른 어떤 정신세계 정도로 이해한다면 육신의 기쁨이나 만족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영혼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단어로 다가오면서 성경의 깊이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육신과 영혼은 사실 인간의 존재를 구분하는 의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나누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으면 영적인 존재이고 그렇지 않으면 육적인 존재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를 영, 또는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만족은 세상 것으로 가능하지만 영혼의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고후 3:5).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것은 ‘과연 나는 육신의 차원이 아닌 영혼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입니다. 현대 교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을 육신의 만족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차원에서 찾습니다. 결국 기도한 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기도라는 것에 실망을 하게 되고 결국 ‘기도해도 소용없다’라는 생각과 함께 기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찾되 육신을 풍족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그것은 영혼이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영혼이 하나님을 찾고 우러러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깊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7절의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는 내용을 보면 다윗이 환난을 겪을 때 86편을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으로 인해서 다윗은 1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매우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가난과 궁핍이 물질적인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가난과 궁핍을 말했다면 다음에 이어질 기도 내용은 물질의 풍성과 연관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영혼의 보존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감지했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자기 영혼의 상태에서 그 어떤 문제도 감지하지 못하고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라고 생각했다면 영혼을 보존해 달라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다윗이 감지한 영혼의 문제가 바로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라는 말에서의 구원의 의미도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영혼에 기쁨이 있고 만족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환난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환난은 교만하고 포악한 무리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마 다윗의 치려는 자들로 인한 환난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처럼 교만하고 포악한 무리들로 인해 환난을 겪을 때 다윗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불안과 두려움 등등으로 그 마음이 평안치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가난하고 궁핍한 영혼의 문제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보존과 함께 구원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있어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윗이 환난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하고 포악한 무리들을 치시고 다윗을 환난에서 건져 주심으로 영혼이 보존되고 기쁨이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다른 말을 합니다. 17절을 보면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라고 말하는데,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윗을 보고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은총의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은총의 표적이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보다 잘돼서 그들을 이기는 것일까요? 이런 방식의 은총의 표적은 없습니다. 인생은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되고 못되는 것으로 경쟁하거나 신앙이 낫다는 우월감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다윗의 대적은 다윗을 밑바닥으로 끌어 내리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사탄이 하나님께 욥의 신앙을 세상에서 누리는 재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합니다. 욥은 사탄에 의해서 자식과 재물을 모두 잃게 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욥의 믿음을 재물과 연관시킨 사탄이 많이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어려움으로 인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5절). 이것이 영혼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문제에서 해결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의 표적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 해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도우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으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된다면 신자는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기쁨이며 만족입니다.

 

 

신자는 기도는 육신의 편안함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잃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육신이 편해진다면 만족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잠간일 뿐입니다. 다른 문제로 인해서 또 다시 불안과 두려움에 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되는 신앙의 세계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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