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0.14 13:02

(91강) 거기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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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7:1-7http://onlycross.net/videos/psa/psa-87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설교>

 

본문을 보면 ‘거기서 났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4,5,6절). 그리고 7절에서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87편은 출생의 근원, 즉 존재 근원에 대한 내용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은 사실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물론 부모를 모르는 고아라면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87편에서 말하는 존재 근원은 그러한 출생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87편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7절의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는 구절을 보면 자신을 존재하게 한 근원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존재의 근원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근원이 무슨 대수라고 그 것 때문에 노래하고 뛰어 노느냐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존재 근원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보면 사람은 ‘내가 존재 한다’는 것보다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유도 대개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서나 자식을 향해서도 이런 마음이 참으로 강한 것이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존재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분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근원을 하나님께 두며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에게서 그러한 감사가 나온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은 ‘나는 존재 한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느냐’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람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비교해 보면 존재 가치는 분명 부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지로 산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국을 생각해 보면 선뜻 부자로 존재한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의 결국을 두고 생각해 보면 분명 부자가 아니라 거지 나사로의 존재가 더 가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지’라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자라는 것도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거지나 부자라는 것이 그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은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답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그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존재 가치의 기준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믿음의 시각입니다.

 

 

세상은 존재 가치를 ‘무엇을 가졌는가?’로 판단합니다. 힘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을 가진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 반면 가지지 못했거나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힘도 영광도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가치 없는 판단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에 신자가 자신의 존재 근원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자신을 존재케 한 근원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는 말은 ‘나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주 들은 말이며 또 그렇게 알고 있고 고백하고 믿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믿는다고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나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노력과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사실을 받아들이십니까?

 

 

우리의 존재 근원이 하나님께 있고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면 내가 지금 무엇을 얼마나 누리고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항상 내 형편과 처지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하게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진심으로 복 있는 자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고 말합니다. 라합, 바벨로, 블레렛, 두로, 구스, 이들 모두는 이방인입니다. 즉 이방인의 존재 근원 역시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이방인들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온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입니다.

이 말들의 의미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물론하고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됨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온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존재하고 이방인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그러한 민족적 문화적 차별과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 백성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롬 9:24,25절을 보면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방인 중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우리를 백성이라 하시고, 본래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던 우리를 사랑한 자라 부르십니다. 이것이 신자 된 우리의 존재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이 우리를 노래하고 뛰게 하는 것입니다.

 

 

1,2절의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성산,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산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가 베풀어짐으로써 백성 아닌 자가 백성이 되고. 사랑 밖에 있는 자가 사랑한 자가 되어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시온의 문으로 출입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주의 피로 용서함을 입은 신자들이고,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수를 세시고 등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 근원이며 노래하고 뛰며 기뻐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인한 생명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이미 심판에서 벗어났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심판에서 벗어난 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생명의 문제가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의 문제로 다가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심이 여전히 사라질 세상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시고,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분명한 답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존재하는 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근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 아래 있는 자와 용서 밖에 있는 자로 구분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은 이렇게 구분되어 그 가는 곳이 달라집니다. 신자는 이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 아래 있음으로 기뻐하게 되는 것이고, 자신을 하나님의 용서 아래 있게 한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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