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1.04 13:58

(93강) 하나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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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9:1-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89011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5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6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10 주께서 라합을 죽임 당한 자 같이 깨뜨리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11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12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

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15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16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17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설교>

 

시 89편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이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는 말로 시작하고 마지막 구절인 52절이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라는 말로 끝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89편의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단지 창조주시고 유일하신 신이시기 때문에 찬송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의해서 나와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문제는 즐거워서 노래하는 그런 차원이 아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찬송은 이 세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의 삶을 보면 이율배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자로 살아가면서도 찬송보다는 불평과 탄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찬송시라고 하는 본문에도 탄식이 있습니다. 47절에서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것을 두고 탄식을 합니다. 어찌 보면 찬송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생을 두고 보면 허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의 때는 정말 짧습니다. 100년의 세월도 견디지 못하고 70,80년이면 세상을 떠나야 하고 그보다 더 빨리 떠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것으로 빨려 들어가 끝나 버리는 인생을 생각해 본다면 허무하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이 깊은 기쁨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시편 저자의 탄식은 단지 짧은 인생만을 생각하며 한탄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기쁨으로 더 깊이 나아가는 탄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탄식과 찬송이 함께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찬송은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한 탄식에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됨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탄식이 없는 찬송은 죽음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노래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각도 없고 인생의 허무함도 모른 채 그저 자기 즐거움에 빠져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반면에 탄식에만 머무르게 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는 인생인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탄식과 함께 찬송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탄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낙심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삶이 여러분을 불평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의 다른 점은 그러한 어둠에서 빛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에서 생생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불평과 낙심과 탄식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생명 사건이 빛으로 다가오게 되며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가 존귀한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대대에 알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구원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품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이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믿음이 한결같지 못합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수시로 변합니다. 마치 홍해를 건너게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에 마실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은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이 수시로 변한다면 인간이 잘할 때는 사랑하시고 못할 때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늘 변하고 무너지는 자신의 나약함을 바라보면서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간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의 성품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나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고 나의 성품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아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성질을 다 드러내고 살아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혹 믿음이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인자함과 같은 성품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의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서 자신의 인자는 인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인한 구원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간혹 사람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 실망을 했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신뢰를 두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나 또한 타인에게 실망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아무도 믿지 말고 의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은 그 누구도 같은 자리에 변하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믿음의 자리로 이끄시고 붙들어 놓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것이 곧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산다고 해도 한결같은 인자와 성실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될 수 없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3-4절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셀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언약을 맺고 그 언약대로 이루실 것을 맹세하셨다는 것인데, 우리의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방식으로 구원하는 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를 주의 기이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6절)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신은 항상 인간을 보고 있습니다. 잘하면 복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신입니다. 따라서 성실은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실히 신을 믿고 섬기는 자를 복주겠다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은 늘 변합니다. 이것을 간과하기 때문에 신에게 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과 성실을 동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현대 교회의 사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 즉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앞세우며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서는 찬송이 나올 수 없습니다. 찬송을 한다고 해도 모두가 형식일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허무하고 무능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의 세계에 참여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였습니다. 이 언약과 맹세로 인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인간의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고 성실하심을 폐하지 않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33,34절)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한 깊은 찬송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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