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1.11 13:17

(94강) 죄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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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0:1-17http://onlycross.net/videos/psa/psa-90011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설교>

 

오늘 본문을 읽은 사람들이 대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생무상’일 것입니다. 3절의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라고 하신 말씀이나 4절의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는 말씀, 그리고 6절의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는 말씀 등등이 우리로 하여금 인생무상을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90편이 우리에게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있는 것일까요?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은 굳이 성경이 아니라고 해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마치 상식처럼 얘기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무상은 기독교적 사고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에게 인생은 그저 무상하다고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한 신자의 인생이 허무하고 그래서 무상하다면 우리 인생을 책임지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 또한 무상하고 헛된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이나 덧없다는 것은 홀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붙드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온 신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인 것입니다.

 

 

90편은 모세의 기도이고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노년에 하는 말이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 ‘인생은 무상하다’는 의미의 말을 할리는 없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앞에서는 마치 인생무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일생동안 즐겁게 기쁘게 해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3절에서 인생이 티끌로 돌아간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는 죽을 시점에서 자신이 티끌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4절에서 말한 것처럼 주의 목전에서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처럼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의 끝에 서서 돌아보게 되면 살아온 인생이 결코 길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굳이 마지막이 가까워진 노년이 아니라 해도 지금의 자리에서 지나온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20년이든 30년이든 길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언제 그만한 세월이 지났는지 아쉬울 만큼 짧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모세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 같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몇 년을 살았든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어제에서 오늘로 바뀌는 밤의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이십대는 세월이 기어가고, 삽십 대는 걸어가고, 사십대는 뛰어가고, 오십대는 날아간다고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끝에 서서 인생을 티끌로 돌아가고 풀과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모세가 뒤에서는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해달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남은 일생은 즐겁고 기쁨으로 살게 해달라는 것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모세가 노년에도 남은 인생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모세는 인생이 풀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덧없는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즐겁고 기쁨의 인생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인자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고 말합니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른 것처럼 인생 역시 지금은 꽃이 핀 것 같은 세월을 지나지만 결국은 모두가 시들고 말라집니다. 그런데 인생이 그처럼 시드는 것을 주의 노에 소멸되는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생이 죄 가운데 있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로 인해서 소멸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죽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의 인생이 꽃처럼 화려하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현재는 화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로 소멸해가는 것이 인생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8,9절도 같은 말입니다. 모세는 인생을 죄 가운데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생이 주의 분노 아래 있기에 하루하루 사는 모두가 주의 분노 아래 지나가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잘살든 못살든 모두가 주의 분노 아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말하는 인생은 불교가 말하는 인생무상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세월과 함께 흘러가고 결국 죽는 인생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생을 죄악 가운데 사는 것으로 바라보며 결국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70을 살든 80을 살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고, 결국 멸망에 이를 것임을 생각한다면 자랑할 것이 없고 남는 것은 오직 수고와 슬픔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11절을 보면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12절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인생을 계수하라는 것 또한  인생이 주의 분노 아래 있음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인생을 계수하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있게 되면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이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자를 모르는 인생이야 말로 진심으로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인생무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생무상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 아래 사는 인생은 헛되지도 무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티끌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인자 아래 있는 신자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이 즐거움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14절의 모세의 말은 자신의 일생이 주의 인자하심으로 살아온 것임을 깨닫게 하셔서 지나온 모든 일생이 기쁨이고 즐거움이었음을 알게 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노년에 깨닫게 된 이 같은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이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인생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나오고 하나님의 분노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하나님의 분노를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의 인자가 얼마나 고마운가를 알게 됩니다. 죄로 인해 소멸되어야 할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허무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자를 생각하면 인간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한 구원의 행위 안에서 인간은 허무하지 않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신자의 인생을 기쁨과 즐거운 것으로 말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든 80이든 기쁨과 즐거움의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하나님의 인자가 만족이 되는 것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신자는 인생이 죄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분노 아래 있음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헛된 세월은 하나님이 없이 홀로 살아온 인생을 의미합니다. 세상만을 토대로 하게 되면 인생은 무상하고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인생이라는 것만으로 복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인생에 대해 실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실망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삶이 그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곧 욕망이라는 사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끝에서 욕망으로 이룬 모든 것을 소멸을 경험하면서 인생은 헛되다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안에서 인생이 헛됨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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