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1.25 10:32

(95강) 하나님을 향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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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1:1-16http://onlycross.net/videos/psa/psa-910116.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설교>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에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라는 말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재앙과 환난에서 건지신다는 말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3절)고 하고,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7절)고 말합니다.

 

 

그리고 9-11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화가 미치지 못하고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은 모든 삶이 이 말씀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질병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재앙으로부터도 면제되며 어떤 화도 겪지 않는 안전한 생활을 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신자라는 것 때문에 그 어떤 사고도 당하지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편히 살고 장수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91편이 비록 들을 때는 힘이 되는 내용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우리 현실에 빗대어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이 진심으로 내게 이렇게 일하신다’라고 실감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에서 경험하고 확인하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안할 때는 괴리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으로 고생하고 큰 어려움이 계속 되면 하나님은 멀리 느껴지게 되고 말씀 또한 현실 속으로 사실이 아닌 괴리로 다가오기 십상입니다. 그러면 91편은 어떤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1절을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91편 저자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존자는 가장 높으시고 존귀하신 분을 말합니다. 그러한 분의 은밀한 곳이라면 그 어떤 악한 세력도 침범할 수 없는 곳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전능자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분의 그늘 아래 있다는 것 역시 그 어떤 세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이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현실과의 괴리 때문일 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그곳은 생명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신자의 하나님과 육신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전능자의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게 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육신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문제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지존자이시고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도우심과 지키심은 항상 악한 세력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생명의 완성으로 끝나는 것으로 확인되어 집니다. 때문에 육신의 문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증케 하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육신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나약하고 무기력한 죽음과 실패의 자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증거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승리는 육신의 성공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승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한 세력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를 간다고 해도 악한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전능자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요 요새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악하고 강한 세력이라고 해도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3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를 지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의 소유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소중히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하셔서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진실하시고 견고한 보호 안에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5절부터 고백하는 것처럼 밤의 공포, 낮의 화살, 전염병, 재앙, 이 모든 것들조차도 우리를 전혀 무너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신자가 그러한 일들을 전혀 겪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자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부르신 자를 향한 하나님의 확고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는 말을 합니다. 바울은 신자가 세상의 환난과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환난과 곤고와 박해 등을 겪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육신을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신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난과 재앙과 시험과 유혹에서도 우리를 믿음의 자리에 붙들어 놓으시는 그 사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오늘 이 말씀으로 인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어떤 재앙이나 어려운 일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끊어 놓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존자의 은밀한 것, 전능자의 그늘 아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자가 분명히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을 더 크게 바라보기 때문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이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의 근거를 육신에 두고 있느냐 영혼에 두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신자는 육신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영혼이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생은 세찬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의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육신의 문제도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대로 육신의 문제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위한 삶이 되게 하실 뿐입니다. 영혼의 문제보다 육신만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이지만 하나님은 그처럼 어리석은 우리도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붙들어 놓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고 전능하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든든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세계가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 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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