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2.02 13:37

(96강) 주께서 행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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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2:1-15http://onlycross.net/videos/psa/psa-9201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2

3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설교>

 

시편 92편은 ‘안식일에 부르는 찬송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시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셨던 하나님의 창조사건으로부터 기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와 연관된 안식은 세상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신 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되고자 하는 욕심이 없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이 안식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 스스로 되고자 하는 욕망에 갇히게 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서 안식이 깨어진 자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의 의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심으로써 애굽으로부터의 자유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자신들이 노동하지 않고 누리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날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노동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함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92편을 안식일 찬송시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안식일에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부른 시라는 형식적인 면을 넘어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 즉 하나님의 무엇을 찬송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인해 존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생명의 문제를 간과한다면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할 뿐이고 따라서 생계적인 조건만 풍족히 갖추어 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써 풍족하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계적인 조건이 풍족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신자는 생명의 문제를 소홀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모두 이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계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신자는 성령으로 살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생명이 있는 자로 살게 하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일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주께서 행하신 일이 자신에게 기쁨이 되었음을 고백하며 그 일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이 우리의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랑하고 높여야 하는 것은 내가 행한 일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 행하신 바로 그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모인 교회에서는 인간이 행한 일이 자랑되고 높임 받을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 하나의 굳건한 원칙으로 자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일까요? 1절을 보면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라고 찬송합니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고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다는 것은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즉 시편 저자는 주께서 행하신 일에서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어떤 일이 시편 저자가 말한 주께서 행하신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에 많이 둔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일까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먹고 사는 생계 문제에 많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생계 문제가 풍족히 해결되는 것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습성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풍족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형편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에 대한 생각 역시 둔감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6절에서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을 어리석고 무지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늘 눈에 보이고 손에 쥐어지는 것만 믿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베풀어지는 일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인해서 되어지는 일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계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족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에 대해서는 실망하기 때문에 주께서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고 계신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번성이 생명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7절)고 말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번성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악인을 생명에 있게 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고 주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성하든 빈곤하든 상관없이 모두가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풀 같이 자라고 흥왕 한다고 해도 우리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이것이 악을 행한 자에게 주어질 결국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10절). 하나님께서 죄의 자리에 있던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서 생명을 누리며 영원히 쇠함이 없는 진정한 번성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고 말합니다. 의인의 번성은 악인의 번성과는 다릅니다. 악인은 풀 같이 자라지만 의인은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이 번성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풀같이 자라는 것은 아무리 무성하게 자란다고 해도 곧 시들고 잘라져 버릴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종려나무와 백향목은 강하고 단단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인의 번성은 시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뜰에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뜰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지키시고 가꾸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신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와 힘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안식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번성은 풀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빨리 무성하게 자란다고 해도 악을 행하는 자의 길은 멸망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것을 복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진정한 번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악의 길로 행하던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집에 심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뜰에서 쇠하지 않는 영원한 번성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뜻이 세상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해 두려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고난을 겪는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형통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입니다. 신자의 일은 주께서 행하신 이 일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피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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