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2.09 10:38

(97강) 하나님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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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3:1-5http://onlycross.net/videos/psa/psa-93010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3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4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5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설교>

 

많은 분들이 대표기도를 할 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死)가 아닌 생(生)으로, 화(禍)가 아닌 복(福)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는 대개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이고 주관하심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것은 단순히 세상이 하나님의 주관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으며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피조물의 입장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세계가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곳곳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흔들리기도 하고, 정치적인 문제로 흔들리기도 하고, 전쟁이나 내분도 끊이지 않습니다.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또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 인생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이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 자체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임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잊고 있다기보다는 그 같은 다스림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 아래 욥을 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어버린 욥이 그 소식을 듣고 한 행동은 땅에 엎드려 예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는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사탄이 욥을 쳐서 온 몸에 종기가 나게 함으로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의 아내는 주어진 그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욥이 하나님을 신앙하며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힘을 쓴 모든 것을 봐왔기에 그런 욥이 당하는 재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욥은 이런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화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욥이 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이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권위와 다스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 눈에 펼쳐지는 현실이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은 악한 영이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불의의 길로 이끌어 갈 때 하나님이 택한 자기 백성을 구출하여 의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위이며 위대하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그것을 전부로 여기면서 울고 웃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권위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생각지 못한 삶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이 더 고통스러움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깊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위와 다스림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증거되기를 원합니까? 악한 자는 즉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20층 건물에서 추락해도 멀쩡하고, 기도를 하면 즉시 응답이 되고, 평생 병과는 상관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까?

 

 

설사 그렇게 산다고 해도 모든 인간이 회피할 수 없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단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망, 즉 멸망이라는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실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인간의 실상을 기준하여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위는 우리를 멸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20층 100층 건물에서 추락해서 죽지 않는 기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이것을 세상은 시시하게 여깁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 자체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또한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 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위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증거를 봅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십자가를 믿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로 일하시는 위대하신 일인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고 말합니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가 스스로 권위를 입으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가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시편 저자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는 실증적인 것을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눈으로 보고 하나님이 다스린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일을 내세워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가 이렇게 실증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나, 다스림, 권위, 이러한 것은 우리가 실증적으로 확인하여 인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식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다스림도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믿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실증하고 확인할 수 있는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다스림의 증거가 매우 확실하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믿음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우연이 없고 시시한 것이 없게 됩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에 의해 되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고,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까지 하나님의 다스림의 증거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존으로 보게 되는 이것이 믿음의 시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시각에 대해서는 아직 어둡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증거들을 시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면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세계를 살아가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늘 흔들리고 힘들어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신다면 진심으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자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열망이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서 권위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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