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12.16 09:49

(98강) 복수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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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94:1-23http://onlycross.net/videos/psa/psa-940123.wmv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설교>

 

시편 저자는 1절에서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분으로 말하며 시작합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은 조금은 낯선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시고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분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사랑도 심판도 하나님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심판은 전혀 다른 이질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서로 역설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질적인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에게 국한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로 인해 확증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심판으로 말미암아 더욱 선명하고 확실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뜻입니다. 2절에서도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게 됩니까?

 

 

세상은 신의 심판을 권선징악의 의미로 많이 이해합니다. 윤리를 기준하여 착한 사람은 복을 주고 악한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세상이 알고 있는 신의 속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7절을 보면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악인이 개가를 부르고 주의 백성이 짓밟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심판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심판을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조차도 심판을 막연하게 세상 마지막 때 있을 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충 살다가 죽을 때 잘 믿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 받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관점으로도 심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현실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이 아닌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의 상식을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고유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곧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가 주저 없이 열심히 믿으면 복 받고 믿지 않으면 벌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에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코 그 말처럼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믿는 자가 복 받는 것이 현실이라면 굳이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한 대로 우리가 접하는 현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세상을 우리의 생각대로 다스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심판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입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도덕과 윤리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덕과 윤리라는 기준을 해체해 버린다면 과연 무엇을 악으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과 윤리로도 드러나지 않는 악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드러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자기 확대의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이익을 더 크게 여기는 욕망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 또한 상실해 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취하여 더 강한 힘을 추구하는 교만으로 드러나는 악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눈에 누가 악인으로 보입니까? 여러분이 세상에서 목도하게 되는 악인은 수없이 많습니다.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사기를 치며 자기 이익을 꾀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여러분 자신은 예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또한 나를 위해 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 악인이 바로 내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복수의 대상, 심판의 대상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과 윤리로는 도무지 성립될 수 없는 일입니다. 도덕과 윤리 안에서는 나름대로 착한 사람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의 착함은 무너지기 마련이고 우리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본성이 발각되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악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 역시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하는 악이 그 바탕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는 우리의 육이 아니라 영의 문제를 위해 오셨음을 간과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오직 말씀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죄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는 세상은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제멋대로 악과 선을 규정하며 스스로 선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하지만 말씀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실체는 온통 악으로 가득할 뿐이고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살고자 하는 우리를 하나님을 어떻게 다스리실까요? 그것이 바로 징벌입니다.

 

 

10-11절을 보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신자가 자신의 악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징벌이 마땅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징벌이 마땅하다면 우리가 겪게 되는 그 어떤 일도 부당한 것은 없습니다. 부당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벌은 단순한 벌의 의미가 아니라 육의 생각으로 사는 우리를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취지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의 허무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왜 허무합니까? 온통 육의 문제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육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께 나오고 하나님을 부르며 간구합니다. 육이 헛되다는 것을 안다면 헛된 육의 문제에 매달리는 자신의 믿음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아예 육의 헛됨을 간과하고 있기에 사람의 생각이 온통 허무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징계하심으로 헛된 육의 생각을 무너뜨리시고 영의 문제에 마음을 두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우리를 육에서 벗어나 영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이기 때문에 12절의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처럼 징계가 오히려 복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징계가 비록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씀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신자는 아픔과 고통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위로를 받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1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고 돕지 않으셨다면 그 영혼은 이미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도우신 것이 곧 징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가 신자를 의의 길로 이끌어 가는 도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징벌하심으로 육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영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도움이 없는 것입니다. 즉 내어 버려두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아무리 형통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결국 멸망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육의 생각에 붙들려 흔들리는 우리를 징벌하시면서 도우시는 여호와가 우리의 요새이시고 피할 반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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