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5.19 09:53

(119강) 여호와를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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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5:1-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15011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2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9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0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2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5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17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18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설교>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우상, 즉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상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신앙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한분만을 신앙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겉으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와 동시에 또 다른 종교를 믿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참된 신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우상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문제를 계명으로 남겨 놓으신 것은 인간은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형상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신적인 존재로 만든 것으로 말씀합니다. 즉 나를 위해서 나를 돕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우상의 본질인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을 때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은 아론을 충동질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여기며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책망하실 때도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었다는 말씀을 합니다(출 32:8).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을 만들고 그 형상을 신적 존재로 여기며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신앙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을 과연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자기를 위해 형상을 만든 우상 숭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조롱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롱은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입니다.

 

 

세상은 가시적인 형편을 통해서 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신을 자기를 섬기는 자를 도와주며 고통과 아픔에서 건져주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신을 찾고 신앙하는데도 불구하고 고통과 아픔이 계속될 때 ‘네가 믿는 신은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조롱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잘못 되는 것보다 잘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게 되는 분명한 현실은 아픔과 고통이 우리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불행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도우신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기복신앙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함께 하시고 돕고 계심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를 위한 신으로 여기는 것이고 우상을 찾는 본질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115편은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의 말을 들을 정도로 고통에 처한 상태에서 진심으로 복 받은 자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헛되고 허무한 일임을 알려 줍니다.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조각물일 뿐인데 거기에 절을 하며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말합니다.

 

 

4-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상은 입이 있다고 해도 말을 할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곧지 못하며 목구멍으로는 소리도 내지 못하는 말 그대로 생명이 없는 형상일 뿐입니다. 그것을 마치 신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기도하고 복을 비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도 허무한 것으로 좇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을 자신의 정성과 열심에 감동하여 뜻을 돌이키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현대 교인들도 하나님을 그러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자신의 행함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행함이 어떤가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의 여부가 결정되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행함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우상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상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1절에서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은 영광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으로 우상의 문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은 자기 영광을 위해 신을 찾는 것이지만 신앙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되면 결국 영광의 질적 차이를 따지게 되고 그 차이는 차별로 이어지게 됩니다. 누구의 영광이 더 가치 있고 나으냐는 것으로 비교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영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족히 받은 것으로 차별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신앙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앙의 세계에서 이러한 차별의 모습은 도저히 나타날 수 없습니다.

 

 

12,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합니다.

 

 

복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은 일반인의 집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아론의 집은 제사장 집안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신도와 목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두에게 동일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목사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13절의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며 우리를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는 자 되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복 있는 자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죽은 자란 생명에 있지 않은 자이고, 생명에 있지 않기에 자기 현실만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현실이 좋으면 감사하고 좋지 않으면 실망하며 원망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찬양은 비록 비천한 자리에 처해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행하신 생명의 사건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고 경외하는 것이며 복 있는 자라 일컬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이러한 신앙의 자리에 붙들어 놓기 위해 도우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도움이시요 방패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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