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5.26 09:43

(120강) 은혜와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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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6:1-19http://onlycross.net/videos/psa/psa-1160119.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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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설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그 믿음은 어떤 형편, 어떤 자리에서도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형편에 처해있다고 해도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 자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믿음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야’라고 믿는 것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이런 것이 믿음에 대한 오해인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긍휼과 자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믿음이 있는 신자는 어떤 형편에서도 나에게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도 이런 믿음에 있는 저자가 고난의 처지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3절을 보면 저자는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심한 환난과 슬픔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고 8절에서는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라고 말하고, 10절에서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라고 말함으로 저자의 현실적인 고난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저자는 먼저 하나님에 대해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1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말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자는 평소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환난과 슬픔에 처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며 불평과 원망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신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물론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5절)는 내용을 보면, 저자가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환난과 슬픔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영혼을 건져 달라는 것은 단지 육신의 문제로 인해서 근심하고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혼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육신과 또 다른 어떤 구조물이 아니라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인간 자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인간은 단순한 육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명에 속했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한 생명에 속해 있는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는 기도는 환난과 슬픔에 처한 고통의 형편에서도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굳건히 붙들려 있기를 소원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난과 슬픔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신자의 기도입니다.

 

 

저자의 믿음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순진한 자를 지키시고 어려울 때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환난과 슬픔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환난과 슬픔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고 나를 지키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믿음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환난과 슬픔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앙심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고 행하신 일에 대한 찬송이고 감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 신자의 찬송과 감사는 주어진 형편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우리의 믿음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날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를 찬송과 감사의 세계로 이끌어간 하나님의 일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12절에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면서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만큼은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이 은혜는 환난과 슬픔의 처지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함께 하시며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지키시고 건져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참된 능력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힘든 환경에서 건짐 받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슬픔이라는 형편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찬송하고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이미 응답 안에 있는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환난과 슬픔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크신 은혜입니다. 우린 지금까지 이 은혜를 보답한 적도 없고 보답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우리를 믿음의 자리에 붙들어 놓고 계신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후대 받을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후대보다는 심판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후대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이고 자비하심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믿음일 때 이 믿음으로 인해 환난과 슬픔에서도 평안함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평안에 머물기를 원하고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면 이러한 평안을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를 나타내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생활의 한 방편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살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살기 위해 믿는다면 삶을 위해 많은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한 것을 받기 위해 믿음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에 평안과 감사와 찬송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보답할 수 없을 정도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환난과 슬픔도 은혜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신자는 환난과 슬픔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믿음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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