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6.02 10:45

(121강) 인자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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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7:1-2http://onlycross.net/videos/psa/psa-1170102.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설교>

 

본문은 시편에서 가장 짧은 시로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다른 시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두 구절로 되어 있는 시편이라고 해도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짧거나 귀에 익숙한 내용이라고 해서 소홀히 여길 수 없음을 먼저 주지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스라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모델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통해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만 알 수 있다면 잘못된 신앙으로는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큰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을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이 특권이 되어서 죄가 용서되고 무조건 복을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는 이방나라를 세워서 가차 없이 징벌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이스라엘이든 누구든 죄를 범한 자는 징벌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셨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공평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게 된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지식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 습득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으려고 할 뿐이지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고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해서 감사하고 기뻐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보게 하시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세계로 이끌기 위해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그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 그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그 행하심을 아는 신자에게만 가능합니다. 찬송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자와 구원 받아야 할 자의 관계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것이 찬송인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자신의 정성을 보이며 그 정성을 보시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베푸시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고받는 관계에서 찬송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베푸신 것을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신앙에 대한 대가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진실하심은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육신의 잘됨을 하나님의 인자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육신의 잘됨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세상에서의 출세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음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거나 머나먼 미래에 생각해도 될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삶을 부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육신의 잘됨에 매이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모든 인간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악에 붙들려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이며 무엇으로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길이 있고, 그 길로 우리가 가게 되었다면 육신의 잘됨과는 비할 바 없는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신자에게 선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라는 계획과 작정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좋은 일과 나쁜 일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삽니다.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육신의 문제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한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모든 문제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인자와 진실하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신자에게 나쁜 일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비록 힘든 일이 있고, 그로 인해 갈등이 있다고 해도 생명으로 인한 소망이 위로가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문제 앞에서 세상의 일은 사소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자와 진실하심으로 누리게 생명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이 우리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늘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찬송 또한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진실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에 옳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신자는 이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신자가 이 안목만 분명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과 다른 길을 가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와 신자 아닌 자의 구별입니다.

 

 

육신의 잘됨의 여부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육신의 잘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집착한 자의 종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육신이 잘되고 못되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있어서 모든 삶은 언제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인자와 진실하심이 우리를 이러한 삶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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