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6.09 09:57

(122강) 여호와는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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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8:1-9http://onlycross.net/videos/psa/psa-11801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설교>

 

오늘 본문에서 굳이 밑줄을 치고 싶다면 어떤 구절이겠습니까? 아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6,7절)는 구절에 마음이 끌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호와가 내 편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대에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일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전능자이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신다면 인생은 형통해지고 복을 누리며 안락한 삶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이 그 같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시면서 내 편이 되어 나를 위해 일해 주시는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대에 부응하시는 방식으로 내 편이 되어 일하시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이며 큰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시며 일하신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입장과 환경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가 오기를 원하고 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가 오지 않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드실까요? 두 사람의 평소 신앙생활을 따져서 기도를 더 많이 했거나 십일조를 잘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실까요? 이것이 신에 대한 종교적 사고방식입니다. 결국 이것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겨우 욕망으로 넘치는 나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수호신 정도로 여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말할 때 주지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입니다. 즉 시편 저자가 말하는 ‘내 편’이라는 말에 섣불리 나 자신을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말을 달리 풀이하면 ‘여호와는 나 같은 사람의 편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저자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에 저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노래합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찬송은 4절까지 반복되고 있고 마지막 구절인 29절을 보면 1절과 동일한 내용으로 끝납니다.

 

 

이것을 보면 118편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 감사하는 찬송시라고 할 수 있고, 118편의 저자는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자신의 삶에서 깊이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말하려면 무엇보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고 경험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편 저자가 경험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5-28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5절에서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고통 중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고통 중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저자가 말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고난 중에 있는 자신을 도와주신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자신의 삶을 배경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힘든 문제도 해결되고 좋은 일만 일어나며 편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자는 세상의 현실이 부정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차치하고서라도 믿는 사람조차 고통을 겪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 자신의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삶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 어떤 고통과 비참한 사건에서 훼손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지진이나 해일로 인해서 수십만 명이 죽는 재앙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훼손되지 않은 채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생존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문제에서는 하나님의 인자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자하심에서 멀어져 있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 뿐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자신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존의 문제만 바라보지 않고 생명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고 믿게 된 신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비로소 삶의 어떤 문제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내 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내 편이라는 것은 ‘여호와는 나의 편이고 너의 편은 아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이 잘되니까 하나님은 나의 편이고 너는 모든 일이 안되니까 너의 편이 아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생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고통 중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4절)고 노래합니다. 저자는 구원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함께 하는 것으로 여호와가 내 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구원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 권능은 구원의 문제에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고난은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길이 우리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주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고 도우셨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호와가 내 편이시라는 진심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22,23절에 보면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고 말합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라면 쓸모없는 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버린 돌을 머릿돌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고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권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머릿돌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자로 만드십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편이 되어 일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뜻이 이뤄지도록 도우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어코 성취하신다는 의미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여러분이 처한 모든 삶에서 인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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