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7.07 09:36

(125강) 도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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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1: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21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설교>


 

 


신자가 하나님을 신앙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재주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고, 도움을 구할 사람조차 없거나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에는 신의 도움을 구하기도 합니다.

 

 

물론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도움의 요청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있다고 해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면서 모든 일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장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늘을 바라보며 신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나약한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 어떤 힘과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신의 존재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뿐입니다. 즉 죽음을 두고 신의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은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신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죽음을 두고 신의 도움을 구한다고 해서 육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혼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실제적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과 사망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기에 신자는 죽음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처해있는 실제 현실임을 생각한다면 신자가 하나님께 구할 도움은 육신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문제여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대개는 육신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래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절)라는 구절도 자신이 처한 기본적인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분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고대인은 물론이고 현대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은 하늘에 존재하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고 하는 것이 더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121편은 막연하게 하나님을 부르면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을 도와주기를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움이 해결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라면 신자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없어야 하고, 있다고 해도 금방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자 역시 불신자와 다를 바 없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상처를 입으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삶의 현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이 해결되었다고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의 이야기일 뿐 대다수의 신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저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나를 도와줄까?’라는 의문의 말이 아니라 ‘나의 도움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확신의 고백입니다. 저자의 확신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절)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한 확신이 있습니까? 이 확신이 없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것임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이 여러분이 원한 대로 순탄하게 나아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순탄한 인생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시편 저자 한 개인의 경험과 고백이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말합니다. 저자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지키심과 도우심은 한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든 부자든, 세상일에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지키심과 도우심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세상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한다면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앙은 우습게 보일 것입니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쉬운 문제를 두고 기독교인은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만 찾고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처한 형편과 상관없이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고백할 수 없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세상 전부를 살 돈도 도움이 안 되고, 세상을 뒤 흔들 권력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의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입니다.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시온 산에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하면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시온 산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자는 시온의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어떤 도움을 기대했을까요?

 

 

저자가 하나님에게서 육신의 문제를 위한 도움을 받고자 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힘 있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영혼의 문제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다. 인간의 영혼은 죄에 붙들려 있습니다. 마귀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해 살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고 자비하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귀의 유혹으로 죄에 빠져 삽니다. 이러한 우리를 도와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재물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까지 계속되어진다는 것이 8절의 말씀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구원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의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까지라면 그것은 곧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생에 마음을 둔 신자는 ‘나의 도움은 오직 여호와에게서로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어떤 환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사정보다 하나님의 사정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려움과 환난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신자 된 사람의 할 일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 어떤 인생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는 믿음에 이끌려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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