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8.04 09:54

(128강) 우리의 도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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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4: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24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설교>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너희 편이 아니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것을 보면 시편 저자, 즉 다윗은 우리와 너희라는 개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선을 긋는 것이고 우리가 아닌 너희에 속한 자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어찌 생각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가 배타적인 종교로 비판을 받는 것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우리와 너희로 구분하고 하나님을 우리, 즉 기독교인의 하나님으로 말하면서 기독교인만을 복주고 구원하는 분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과연 그런 분인가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사실 현실을 보면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말하기가 많이 어색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 편, 네 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정도로 세상일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원칙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원칙은 믿는 자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내편, 혹은 우리 편이라는 증거물로 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불신자도 얼마든지 잘되고 신자라 해도 화를 당하고 고통을 겪게 되는 현실에서 하나님이 과연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주관하시는지가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다윗은 여호와가 우리 편에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말하는 우리 편은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라는 문구를 보면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이 말한 우리 편이 되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2-6절의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일어날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6절에서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적군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신 것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하신 일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시지 않았음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기준하여 선을 긋고 우리 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124편에서 나타난 ‘우리’라는 개념에서 신앙공동체가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여호와가 우리 편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자들이 산채로 삼켰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호와가 우리 편이 되신 증거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호와의 도우심과 지키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박해자가 이스라엘을 삼키려는 상황에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필요하고 절박한 일이 박해자로부터 벗어나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해자들에게 삼켜지지 않도록 지키시고 도우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셨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내편, 혹은 우리 편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욕망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하나님을 우리 편이라고 말하는 그 의미를 주의 깊이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박해자가 이스라엘을 삼키고자 하는 상황을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무에 걸린 새의 입장에서 올무가 끊어져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새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역시 올무에 걸린 새의 처지에 있다면 저자와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을 것이고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셨다고 기뻐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감사하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올무에 걸린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다른 것으로 구하고 찾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잘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생각하고, 교회가 잘 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그런 의미에서 내편, 우리 편이 되어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실 자체가 이미 밝혀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8절에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로 세상에 되어진 모든 일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의 중심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출애굽을 하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도우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아예 존재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습니까? 단순히 세상에 생존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 자체도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단순히 생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생존만을 따진다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도 모두 해당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의 힘으로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악한 영에 의해 장악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함으로 사망으로 끌어가려는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세력을 이기고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자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자신의 믿음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아는 이들이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했다면 우리를 삼켰을 것이다’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노래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착각입니다. 나의 삶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의 세계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고 악한 세력이 존재함을 망각하고 삽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우심이고 우리 편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으로 증거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도 영원한 생명을 기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우리 편이 되시는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여러분의 믿음에서 우리 편이 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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