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8.25 09:27

(131강) 헛된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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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7:1-5http://onlycross.net/videos/psa/psa-1270105.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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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설교>

 

본문은 솔로몬이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도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 1:2절에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처럼 본문 1,2절에서 헛되다는 말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헛되다는 말은 자칫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차피 인생은 헛될 뿐인데 열심히 살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흐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헛되다고 말한 것은 좀 더 깊은 신앙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세상의 근원을 알고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수고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구조 자체가 자기의 수고가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합니다. 즉 집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세우는 자의 수고가 아니라 여호와가 집을 세우시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가 집을 세우시면 다 되니까 너희는 굳이 집을 세우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세우는 자의 수고를 말하면서도 여호와가 세우지 않으면 그 수고가 헛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가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집이 세워질 수 없다는 뜻일까요? 이점을 이해하기가 조금은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집을 우리의 육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생각한다면 여호와와 상관없이 우리의 수고로 집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가 집을 세우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 육신을 편히 쉬게 하는 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집은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는 육신을 편히 쉬게 하는 공간이 되고 장소가 됩니다. 하지만 집을 안식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이라는 것은 육신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은 될지 몰라도 영혼의 안식처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집을 지었다고 해서 영혼이 편히 안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과 상관없이 우리의 영혼은 늘 흔들리고 무거운 집으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경은 하나님을 안식처로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수고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지 못한다면 그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은 적의 공격을 감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파수꾼이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수고를 한다고 해서 성을 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은 적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파수꾼이 깨어 있다고 해도 힘이 없으면 깨어있음도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파수꾼이 깨어 있는 수고가 힘이 아니라 여호와가 진정한 힘이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심히 수고할 때 많은 것을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수고의 이유를 자신의 힘으로 더 나은 인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수고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때 세상을 탓하며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헛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단순히 잘살든 못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잘살든 못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잘살고 못사는 것이 인생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가 함께 하지 않는가에 의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문제,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인생도 멸망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서의 인생은 모두가 헛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열심히 수고하며 살지만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고 말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수고를 한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목적 역시 자기 성공입니다. 교회에서도 소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주일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신앙 좋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자기 신앙을 위해서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인생을 위해서, 자기 신앙을 위해서 수고하는 모든 것을 헛되다고 합니다. 이유는 나의 수고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수고하든 수고하지 않든 어차피 죄인이라면 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라는 반발이 있다면 그것은 수고로 인한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수고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다면 수고로 인한 보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수고할 수 있도록 하신 은혜에 마음을 둘 것입니다.

 

 

수고를 했을 때 수고로 인한 떡이 주어집니다. 사람은 모두 수고의 떡을 먹으며 살지만 생각해 보면 수고의 떡으로 인해 배부름이 있고 감사와 기쁨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주어진 수고의 떡에 대해 늘 불만입니다.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아지면 만족할까요? 아닙니다. 많아져도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여전히 불만 속에 살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잠을 많이 푹 자게 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배부름과 감사와 기쁨이 있는 인생을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이며 복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다는 것은 수고의 떡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식이 되심을 아는 믿음 위에 세움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부터 보면 내용이 달라집니다. 헛되다는 말 뒤에 자식에 대해 언급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는 내용을 보면 마치 자식이 있어야 인생이 헛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4,5절을 봐도 많은 자식이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식은 우리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자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 낳아진 하나님의 자녀가 여호와의 기업이고 상급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신자는 그 자신이 여호와의 기업과 상급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의 존재 가치를 모르고 인생에 목적을 두고 살기 때문에 수고에 대한 다른 상급,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처럼 수고의 목적을 인생에 두지 않습니다. 인생에 목적을 두고 수고하게 되면 늘 보상에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고 적음에 민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이 낳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때문에 이미 복된 자로 존재하고 그 인생 또한 영광에 붙들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도 열심히 수고하며 살지만 수고의 떡으로 더 나은 인생을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헛됨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거로 한 삶이야 말로 헛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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