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9.15 09:48

(134강) 주를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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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0: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30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설교>

 

  인간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서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음으로 그 인생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은 각기 자녀를 낳으며 그 맥락을 이어갑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구백년이 넘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 긴 삶에서 그들은 수많은 일을 하며 다양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자녀들을 낳았으며...죽었더라’는 것으로 끝납니다. ‘죽었더라’가 그들 인생의 결론이고 아담으로 시작된 모든 인류의 결론이며 오늘 우리들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결론이고 운명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죽음이라는 인간의 실존을 바탕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운명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세상의 실상과 그 내막을 알 수 있고 죽음의 실체를 파헤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죽음을 생물학적 시각으로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성경을 펼치게 되면 죽음의 실체가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임을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원인이 죄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으며 그것이 곧 죽음의 실체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자연법칙이 아니며 우연한 것도 아닙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피조물에게 주어진 절망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선하거나 고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열심을 쏟아 붓고, 가히 세상이 성인으로 일컬을 수 있는 덕을 쌓고 인품을 갖춘다고 해도 죽음이라는 절망의 상태를 먼지만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에서 건질 수 있는 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 어둠에 갇힌 존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30편의 저자도 인간을 이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며 130편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인생에 대해 조금만 심도 있게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소중히 여기고 자랑거리로 삼았던 모든 것이 죽음과 동시에 나와는 상관없게 됨을 생각하며 전도서의 솔로몬처럼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그것을 소망으로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한 깊은 곳이 무엇일까요? 3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라고 말한 것을 보면 죄의 깊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로 가득한 자신의 실체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어둠의 세계로 바라보면서 주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어둠의 세계에 갇힌 자신에게 희망은 오직 주되신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신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짓는지 안 짓는지 살피시고 감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애당초 감시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둠에 갇힌 존재로 늘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잘못된 행함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아담의 후손이라는 인간의 실존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악을 지켜 보신다는 것은 우리가 늘 죄에 일치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린 늘 죄와 일치하여 살아갑니다. 이것을 부인할 분 있습니까? ‘나는 생명과 일치하여 살아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진심으로 어둠에 갇혀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인간의 이러한 내면세계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실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둠에 갇힌 자기의 실존을 파악하게 되면 자신의 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 열심이나 도덕과 윤리로도 감추거나 가릴 수 없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문에 무엇을 행한다고 해도 자기 의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고 오로지 주께만 소망을 두고 주 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4절에서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고 말하는 것처럼 주되신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시고, 어둠의 세계에서 건져낼 수 있음을 알았기에 주 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어둠에 갇힌 채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을 알고, 사유하심이 오직 주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면 주를 향한 그 마음은 어떨까요? 그것을 저자는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는 말로 표현 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한 심정으로 주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파수를 서고 있는 사람에게 아침은 편한 쉼을 뜻합니다. 그처럼 주로 인한 편한 쉼, 안식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7절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와의 인자와 풍성한 속량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로 말미암은 풍성한 속량, 그리고 그 속량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자유와 안식, 이 같은 은총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것이 속량임을 알았기 때문에 죄에 갇혀 있는 깊은 어둠에서 부르짖을 대상은 하나님 한분뿐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복과 편안한 삶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죄의 속량으로 인한 안식의 세계를 바라보며 부르짖을 것입니다.

 

 

죄의 속량이 의미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이 안고 있는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됨을 뜻합니다.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되었다면 그는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구원되었습니다. 때문에 죄의 속량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이며, 이 은총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주가 오심으로 이루어진 은총의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같은 은총의 세계를 간절히 소망하는 심정으로 주가 오시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땅의 것은 그 무엇도 구원의 힘이 아님을 알기에 주께만 모든 소망을 두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자신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자기 한계를 실감하게 되면서 죄를 회개하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죄를 속량하시는 주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파수꾼에게는 아침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신자에게도 영광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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