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2.03 10:27

(105강) 완전한 길

조회 수 355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 101: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1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4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7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8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설교>

 

신자가 신앙으로 인해서 기쁨과 평강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게 된 종교적인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온전한 신앙의 삶을 위해서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알지 못함으로 인해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 즉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인해서 참된 신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인물들의 신앙 고백을 가볍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101편은 다윗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윗이 1절에서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고, 인자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인자와 정의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세계를 사모했고 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는 우리가 수없이 들어본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자와 정의로 다스리는 세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접근하게 되면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용어로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현실에서 드러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자와 정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자하심만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에 대한 심판의 언급이 없이 모든 죄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시는 방식으로 인자가 베풀어진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할 것입니다.

 

 

즉 구원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에 구원으로 인한 감사와 감격이 상실되며 하나님의 인자로 인해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자가 없이 정의만 행하신다면 세상에는 오직 정의로 인한 심판만 있게 됩니다. 정의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의한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로 인해서 멸망으로 끝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가 세상의 불의를 드러낼 때 모든 불의를 덮으시고 용서 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불의한 자에게 심판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인자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됨을 깨달으며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 안에서 자신을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부족한 것이 없이 풍성한 복을 베푸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인자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야 말로 자기 인생에 대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삶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해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다윗은 2절에서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라는 말로 증거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말하는 완전한 길, 완전한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완전한 길, 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완전한 길, 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연관된 것입니다. 불의한 자인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길과 완전한 마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할 문제입니다.

 

 

신 18:13절에 보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따라 살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함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행위는 길흉을 말하는 자, 점쟁이, 요술하는 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등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는 것은 뭔가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장래를 미리 알고 그로 인해 흉한 일은 피하고 좋은 일만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증한 행위로 말씀하시면서 그 같은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래는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장래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 민족처럼 장래를 미리 알아서 흉한 일은 피하고 좋은 일만 있기 위해서 점쟁이, 무당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기에 가증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완전함은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말한 완전한 길이며 완전한 마음입니다.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길을 가는 신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세상의 영광과 권세와 부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뜻은 결코 세상에 있지 않았고, 이스라엘 역시 그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로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하는 사랑과 의가 충만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렘 5:4절에 보면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라는 말을 합니다. 예레미야는 비천하고 어리석음의 상태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한 것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길이 완전한 길이고,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아는 마음이 곧 완전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비천함은 지위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한 길과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자기의 길을 가기를 힘씁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도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이뤄지는 것에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문제는 간과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의 일을 이루는 것에 마음을 쏟을 뿐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비천한 것으로,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을 배교자의 행위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않겠다고 합니다.

 

 

완전한 길에 완전한 마음으로 행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불의함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불의함을 알기에 인자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모든 마음과 뜻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이웃을 헐뜯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불의함을 바라보기에 이웃을 헐뜯을 자격이 자신에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길에 행하는 신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간과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다윗이 이런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에 대한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처럼 부요하고 힘 있는 나라로 세우는데 뜻을 두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이 땅에서 부요한 자가 되게 하는 것에 뜻을 두지 않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길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알고 찬송하며 여호와만을 신뢰하는 것으로 향해야 합니다. 완전한 길은 나의 뜻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길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 시편 (115강) 그의 언약 신윤식 2013.04.14 3402
34 시편 (114강) 영원한 제사장 신윤식 2013.04.07 3286
33 시편 (113강) 저주의 기도 신윤식 2013.03.31 3645
32 시편 (112강) 하나님의 구원 신윤식 2013.03.24 3598
31 시편 (111강)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 신윤식 2013.03.17 3788
30 시편 (110강) 구원과 감사 신윤식 2013.03.10 3650
29 시편 (109강) 영원한 언약 신윤식 2013.03.03 3520
28 시편 (108강) 주께서 하신 일 신윤식 2013.02.24 3964
27 시편 (107강) 여호와를 송축하라 신윤식 2013.02.17 3867
26 시편 (106강) 빈궁한 자의 기도 신윤식 2013.02.10 3713
» 시편 (105강) 완전한 길 신윤식 2013.02.03 3552
24 시편 (104강) 감사와 찬송 신윤식 2013.01.27 3769
23 시편 (103강) 하나님의 거룩 신윤식 2013.01.20 3879
22 시편 (102강) 자기를 위한 구원 신윤식 2013.01.13 3688
21 시편 (101강) 선포되는 의 신윤식 2013.01.06 3486
20 시편 (100강) 심판의 하나님 신윤식 2012.12.30 3577
19 시편 (99강) 완악한 마음 신윤식 2012.12.23 3606
18 시편 (98강) 복수하시는 하나님 신윤식 2012.12.16 4792
17 시편 (97강) 하나님의 권위 신윤식 2012.12.09 3822
16 시편 (96강) 주께서 행하신 일 신윤식 2012.12.02 3849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