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2.24 10:15

(108강) 주께서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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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4:24-35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4243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설교>

 

시 104편도 103편과 동일하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은 여호와가 누구시며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고 그 일을 높이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서는 송축은 불가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을 빼놓고서는 언급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곧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신자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송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3편에서 살펴봤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멀리 옮기신 인자와 긍휼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104편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일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보존하시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와 보존의 사역이 다른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면서도 너무 상투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기가 있어서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예 공기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면서도 물이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햇볕이 혜택을 입고 있으면서도 태양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신 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호흡을 하고 물을 마심으로 생존하면서도 누구의 은총으로 생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잊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생존 자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존재 자체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 104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절을 보면 하늘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는 것은 빛이 있는 곳에는 주가 계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빛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빛은 단순히 빛이 아니라 주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음을 증거하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휘장같이 치셨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하늘을 본다고 해도 사람이 볼 수 있는 하늘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 하늘을 하나님이 휘장처럼 펼치셨다는 것은 우리는 하늘만으로도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실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라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말하는데, 3절에서 말하는 물은 궁창 위의 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여기서의 물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하늘 높은 곳이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5-8절은 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산까지 덮을 정도의 해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는 일도 있지만 그 엄청난 해일도 결국은 바다로 물러갑니다. 이것을 시편 저자는 주께서 꾸짖으신 것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연재해로만 바라보는 일들을 시편 저자는 그 배후에 주가 계신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땅이 여러 가지 일로 흔들리고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결국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께서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도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바다가 땅을 덮지 못하는 것을 주께서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자가 세상을 이러한 신앙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붙드심과 다스림으로 인한 은총이라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신자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삶으로 인해 흔들리기 보다는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의지하면서 평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0절부터는 산에서 흐르는 샘으로 시작하여 땅에 존재하는 동 식물에 대해 말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땅에 존재하는 것의 존재를 당연하게 바라봅니다.

 

 

가령 산에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산이니까 나무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산에 샘이 있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산에 흐르는 샘의 물을 들짐승이 마시고 샘가에 푸르게 자란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 지저귀는 것을 보면 그저 ‘경치가 좋다’라고 할 뿐입니다.

 

 

그런데 시편 저자는 그것들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먹이고 마시게 하면서 보존하시는 신비한 일로 바라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시편 저자는 그 정도로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104편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이 얼마나 좁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이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권세로 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한 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송축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 살아왔음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고 말하는 것처럼 땅은 주께서 지으신 것들로 가득합니다. 어느 것 하나 주로 인해 지음 받지 않은 것이 없고, 27절의 말씀처럼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주가 입히시고 먹이십니다.

 

 

존재하는 것으로만 주를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29절에서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고 말하는 것처럼 호흡을 멈추고 죽어 먼지로 돌아가는 것 또한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호흡을 하고 호흡을 멈추는 모든 것이 주의 권세로 행하신 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들의 풀 하나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존재를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일로 가득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31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로 즐거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즐겁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3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세상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를 안다면 세상 것과 상관없이 지금 나를 존재하게 하신, 그것도 예수님을 알고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일로 인해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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