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3.03 09:56

(109강) 영원한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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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5:1-10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5011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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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6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설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104편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지으신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찬송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며 자신 역시 자기의 힘으로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근거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05편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증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시편 저자가 언급하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내용들이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오래전의 과거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맺으신 언약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종으로 팔리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일,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가 거주하게 된 일과 함께 애굽에서 번성하게 됨으로 인해 애굽인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애굽에 재앙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광야로 데려가시고 궁극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시어 가나안 거민들의 소유를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게 하신 일에 대해 증거합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근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저자의 입장에서 그 모든 일은 흘러간 과거사일 뿐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하시고 일하셨다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현재의 일에 관심을 두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과거에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 현재 자신의 삶이 고달프다면 과거의 일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로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기거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증거한 본문의 내용들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시고 어떻게 일하시고 역사하시는가를 증거하는 도구로 부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을 봄으로써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105편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사역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그 같은 구원 사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듯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언약입니다. 8-10절에 보면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리고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 나그네로 거하게 된 일, 그리고 미움을 받게 된 그 모든 고달픔도 우연이 아니라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곧 바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가게 할 필요가 없이 그들이 거주한 땅에서 크고 강한 민족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면, 요셉이 종으로 팔리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애굽에서 미움을 받고 고생을 할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그러한 과정을 겪게 하셨다는 것은 단지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시편 저자가 언급한 역사적 사건이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감사와 찬송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와 찬송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근거로 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으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은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현재에 주어진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자연히 감사와 찬송 또한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와 찬송은 현재 무엇이 주어졌는가와는 상관없이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베풀어졌음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비록 감사와 찬송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보다 적다고 여겨지면 감사와 찬송보다는 불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성은 예수님이 말씀한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품삯을 놀고 있던 자신을 일꾼으로 불러서 일하게 한 주인의 은총으로 여기지 않고 하루 종일 일한 자기 노동에 대한 당연한 삯으로 여겼기에 자신보다 일을 적게 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삯을 준 주인의 처사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송도 이러한 수준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총에 초점을 두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 될 자격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알고 믿는 신자 되게 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신자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의한 무한한 은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가족을 굳이 애굽으로 보내시고 그 애굽에서 구출하시며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에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장차 그들이 누리게 될 가나안 땅의 축복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감사와 찬송은 그 어떤 것도 받아 누릴 자격이 없는 자신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도무지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복에 거할 존재들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여호와만을 구하게 됩니다. 자신의 무능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만을 구하기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에서 긍휼과 자비하심을 생각하게 되며 무한하신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풍성함은 세상 것이 많이 주어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마시 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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