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3.10 10:15

(110강) 구원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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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6:1-15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6011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설교>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른 사이에 그 말씀들에 대해 익숙해지게 됩니다. 즉 말씀들이 귀에 익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귀에 익게 되면 어떤 현상이 있게 될까요? 작년에 중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적으면서 광활한 지평선에 펼쳐진 일몰 광경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난생 처음 목격한 지평선의 일몰 광경은 지금까지도 제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은 채 간혹 깊은 감흥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계속 중국에 머물면서 매일 같이 지평선의 일몰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지평선의 일몰 광경에 이미 익숙해졌을 것이고 더 이상 깊은 감흥을 자아내는 광경으로 바라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랫동안 성경 말씀을 읽고 들어오면서 귀에 익숙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익숙해지게 되면 결국 성경의 말씀들을 상투적으로 듣게 됩니다. 상투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깊은 생각이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믿는다고는 하지만 감사와 기쁨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 익숙해짐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본문 1절의 말씀도 우리에게는 익숙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당연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깊은 그 말씀의 세계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여러분께 생소한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감사’‘선하심’‘인자하심’‘영원함’, 이 같은 말들은 여러분의 귀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깊은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지나치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는데 신자가 여호와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선하고 인자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선함과 인자함은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지, 없다면 왜 인간의 선함과 인자함은 영원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왜 영원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실감할 수 있어야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고 ‘할렐루야’라는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없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면서 감사한다면 그 감사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형식적이고 상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백되고 나타나는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선함과 인자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인자하다고 해도 자신을 배신하고 등을 돌리는 대상을 향해서까지 지속적으로 베풀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하나님이 택한 자에 대해서는 취소되는 일이 없습니다. 비록 배신과 원망을 일삼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선함과 인자로 다스리면서 끝까지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기에 그의 선하심과 인자도 영원하다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어떤 악함에도 불구하고 취소됨이 없기에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영원의 의미가 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106편을 보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배신하고 실패한 죄와 허물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능과 실패는 바로 우리들의 무능과 실패를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은총입니다. 우리의 구원 역시도 이 같은 은총으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은 은총을 앎으로 인한 열매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한 사건들만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신 일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언급하는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삶들까지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접하면서 생생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심은 온통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인자를 잊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6절에서 보면 시편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라는 말로 자기의 악함을 고백하며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7절)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악함이 조상 때부터 계속되어오는 것임을 언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8절)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처럼 구원 받은 자의 할 일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할 일임을 잊지 않는다면 신자는 자기의 공로와 열심이 아니라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구원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의 힘들고 어려운 일에 대해 원망과 불평으로 반응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인자를 베푸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정작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만 급급한 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의 인자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가를 알게 되면 비록 어렵고 힘든 현실에 부딪힌다고 해도 원망과 불평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해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도무지 구원 받을 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우리 실상을 깊이 보고 깨닫는다면 영원하신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를 염려와 불안의 삶이 아닌 평강의 세계를 알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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