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3.17 10:11

(111강)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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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7:1-9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7010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설교>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해주시면 매일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것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가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자 되게 해주시면 매일 감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고, 병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면 병을 낫게 해주시면 매일 감사 하며 살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돈 걱정 없이 부요하게 사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또한 육신이 건강한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근심하고 낙심하는 모습들이 한심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을 보면 그는 당연히 감사하며 하나님만을 바르게 섬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만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민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고 이방인의 신을 섬기는 죄를 행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시편 저자는 감사하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적과 구원 역사를 체험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적과 구원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해도 자신의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볼 수 없다면 감사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사 감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이고 가식일 뿐이며 좋은 일에 대한 잠시 동안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놓치고 있었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07편에서 이스라엘이 감사하지 못한 이유는 2절부터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이방인의 침략에 의해 그들의 종이 된 처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하고 그들의 종이 된 상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면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해 광야 사막에서 고생을 하는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어떤 기적과 인도를 체험했든 사람은 현재에 매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고통과 고난의 상황에서 감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감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저자는 고통과 고생의 형편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바라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절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시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리하는 고통의 그 형편에서도 여호와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형편에서도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복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자가 깨달아야 할 새로운 삶의 세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복을 주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고통과 힘든 형편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에게 함께 하고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이 앎으로 인해서 어떤 형편에서 감사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6,7절을 보면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고통의 형편으로 인해서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의 포로 생활과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광야에서의 고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한 도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고 부르짖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10.11절에서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뜻을 멸시함으로 인해서 바벨론에 포로된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의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는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일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들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한 자신들의 죄를 보게 하고 멸망당함을 당연한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의 마음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면 바벨론에 포로 된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시고 부르짖게 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합니다.

 

 

107편을 보면 8,15,21,31절에서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고통에서 인도하시고 구원하신 일로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편 저자가 말한 인생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의 세계에 들어가서 감사를 배우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고통이 자신의 실상이 되어야 하고 그 고통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인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육신에 병이 들고 하는 일이 실패하고 굶주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원한 고통은 아닙니다. 인생의 참된 고통은 영원히 사망에 갇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고통을 잊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편안함에 복의 의미를 두게 되지만 세상에서 어떤 삶을 누렸든 모든 인간은 영원한 고통에 갇히게 됩니다. 이 같은 인간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인도와 구원의 역사가 제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 뭔지에 대해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고통을 알게 되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고통과 죄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라는 안식처로 들어가게 하신 선하시고 인자하신 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을 알게 하신 것이야 말로 우리 인생에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붙들려 사망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실상에 대해 눈이 열린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가장 큰 은총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일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은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도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신자가 매일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으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은총의 사건의 결과가 됩니다.

 

 

43절에 보면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일들이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그 일을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의 사건, 즉 구원의 역사로 말합니다. 기적은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힘과 노력으로도 불가능한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에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게 되는 것이고 비록 고통과 어려움의 현실에 있다고 해도 그 또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두게 하시는 구원의 일로 바라봄으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의 욕망과 생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영원한 고통에 갇힌 인간의 실상을 알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총이 무엇이고 인자와 선함이 무엇인가를 알게 됨으로 감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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