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3.24 10:01

(112강) 하나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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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8:1-13http://onlycross.net/videos/psa/psa-10801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6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7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9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1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설교>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에 들어와서 말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면 창세 전에 자기 백성을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셔서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며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세계를 향하여 열린 창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열린 창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항상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섬김으로 하나님을 내 편으로 붙들어 놓으려는 종교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서 벗어난 길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시 108편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하는 창문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108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가 어떠한가를 배우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08편은 다윗의 시인데 특이한 것은 역시 다윗의 시로 되어 있는 57편과 60편의 일부 내용이 합쳐진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본문의 1-5절의 내용은 57:7-11절의 내용과 같고, 6-13절은 60:5-12절의 내용과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신학자들 가운데는 다윗이 108편을 먼저 기록한 후에 108편의 내용을 가지고 57편과 60편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57편과 60편을 먼저 기록하고 후에 일부를 발췌해서 108편을 기록한 것인지 연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혀 쓸데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창을 통해서 창밖의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기 일에 매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8편이 어떻게 기록되었든 중요한 것은 108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108편이 있는 이유입니다. 신자가 성경을 볼 때는 항상 이러한 자세를 지향해야 합니다.

 

 

먼저 1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고 말합니다. 내가 노래하고 찬양한다는 말이 시편에서 너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말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식상하게 들릴 수가 있습니다. 식상하게 들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듣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을 반복하기 때문에 싫증이 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자의 찬양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있고, 그 일로 인한 은혜 안에 있는 자가 신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마음을 두지 않은 찬양은 찬양이라고 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을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노래하라, 찬양하라, 송축하라,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말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고 이 같은 일을 행하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일을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하고, 107편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 산 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할 이유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신자의 실패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손길의 다스림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고 보게 하는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신자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뜻을 가지고 우리 존재를 쥐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두고 잘났다 못났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그 삶은 하나님으로 인해 풍성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108편의 중심 내용입니다.

 

 

4절을 보면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하늘보다 높고 진실이 궁창에까지 이를 정도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심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자와 진실하심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6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건지시는 일, 즉 구원과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우리가 반드시 못 박아야 두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힘들다, 어렵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은 선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일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그 일은 우리를 건지시기 위한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인생의 모든 것이 찬양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자는 기쁨과 감사를 안고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합니다.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세계라는 뜻이고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는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서 세상의 무엇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알게 하십니다. 그처럼 큰 기쁨이 어렵고 힘든 일에서도 감사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8,9절을 보면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내 삶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삶에 대해 알지 못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원한 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 기준으로 살겠다 못 살겠다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생명이라는 분명한 뜻을 세우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풍족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그리고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은 관심 밖입니다. 신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가 부르는 하나님은 먹고 사는 문제를 풍족하게 해결해주는 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게 되면 하나님이 구원이 되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말에 심드렁해지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는 말을 합니다. 사람의 구원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서 말 그대로 먹고 사는 일에 근심 걱정이 없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이 헛되다는 것은 참된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족과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세계에 있습니다. 이 세계가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신자 된 우리의 참된 기쁨과 감사, 만족은 그리스도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이 2절에서 말씀한 새벽을 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구원이 되신다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손으로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이뤄내는 것이 없고 남보다 적다고 해서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되고 있음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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