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3.04.07 09:38

(114강) 영원한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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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0:1-7http://onlycross.net/videos/psa/psa-110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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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설교>

 

4절에 보면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은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역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110편은 메시아에 대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셔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임을 계시하는 것이 110편의 내용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이미 오신 분이시고, 우리 또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로 가신 후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대에 있습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리스도가 오실 것에 대해 말하는 본문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불필요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해 계시하는 본문과 같은 내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성경이기 때문에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이미 오신 분인데 오실 것을 계시하는 내용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과연 구약 성경에서 약속된 바로 그분이 맞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를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고 믿는 예수가 다른 예수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에 대한 경계의 말을 했고, 지금 이 시대에도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이 성행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성경이 계시한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많이 들어본 구절일 것입니다. 마 22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실 때 인용한 구절이고, 행 2장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할 때 인용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원수들로 발판이 되게 한다는 얘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발판이 되게 한다는 것은 굴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원수를 굴복시킬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고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이 사망의 권세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원수에 대한 승리며 사찬의 굴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일로 인해서 사탄에게 장악되어 있는 우리가 누리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해방이며 자유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110편이 다윗의 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내 주’는 다윗의 주를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1절의 내용에서는 여호와, 주, 다윗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주의 원수를 주께 굴복시키어 주의 발판이 되게 하실 때 다윗은 악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구원의 일에 있어서 다윗이 행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아들과의 일로 인해서 그 혜택을 누리게 된 것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인간이 행한 바는 없고 행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의의 행함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사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했다는 이것이 믿음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면 신자는 ‘나의 행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것은 세상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열심과 실천 또한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행함과 열심에 의미를 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사탄의 굴복으로 인해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구원은 원수를 발판이 되게 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가 할 일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함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신자가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를 사망으로 끌어가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대신 예수님의 권세에 붙들려서 생명으로 이끌려가고 있습니다. 많은 유혹과 죄 가운데서도 우리로 하여금 주를 바라보게 하시면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으로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날마다 붙드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는 것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믿음조차도 예수님의 일하심의 결과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함을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2절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라는 말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원수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시온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을 찾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그 같은 시온으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부터 왕으로서의 다스림을 시작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 다스림은 원수들까지 포함됩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굴복이며 복종입니다. 즉 예수님께 복종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복종하다는 것은 예수님 앞에서 항복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항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온전히 주님의 행하심과 믿고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에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행함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뭔가 하는 것을 믿음으로 여기는 기존의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행하든 그 모든 것은 주님의 하게 하신 것이며 따라서 주의 은혜일뿐이라는 고백이 나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3절에서는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한다면 그것은 주의 권능으로 인한 것입니다. 주께서 권능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다스림으로 살고 있음을 믿는 신자는 그 헌신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게 하신 주의 다스림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의 다스림 아래 있는 신자를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명이 되는 새벽 이슬처럼 주의 권능 아래 있는 신자는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4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은 여호와의 맹세로 되어진 일입니다. 여호와의 맹세로 인해서 예수님이 왕으로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주의 승리에 우리가 참여됨으로 자유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할 일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생명과 자유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크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의 것을 복으로 여길 수 없는 것이고 나의 행함 또한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증거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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