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9.01 10:39

(89강) 에벳멜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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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8:7-13http://onlycross.net/videos/jer/jer-3807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7 왕궁 내시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아뢰어 이르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10 왕이 구스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헝겊과 낡은 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밧줄로 내리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가 붙들려서 구덩이에 던져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예레미야가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구덩이에 던져진 것입니다. 선지자가 외친 말은 한결같습니다. 처음이나 나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위 때문에 말씀을 가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분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들었는데 왜 분노하게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쪽에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말씀과 말씀 아닌 것을 구분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말은 말씀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그를 악한 자로 규정하여 구덩이에 던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말씀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에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보다는 나 자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되고 말씀을 말씀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어떤 인생을 사는가에 더 관심을 집중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받을 만한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예레미야처럼 하려는 흔적이라도 보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흔적조차 없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우리 자신이야 말로 위선으로 가득한 악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왕궁의 고관이 선지자의 말이 듣기 싫어 그를 붙들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런 죽음의 위기가 올 것을 알면서도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증거하는 선지자의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는 말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큰 흠이 없게 보이지만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악하다’는 선언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듣기 싫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진 자가 곧 우리 자신이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들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을 실천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앙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를 세우시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심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레미야 편에 서서 그를 구덩이에서 나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에벳멜렉입니다. 에벳멜렉은 구스 사람으로 왕궁의 내시였습니다. 그가 왕에게 나아가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진 것은 악하며 성 중에 떡이 떨어졌으니 예레미야는 거기서 굶을 죽을 것이라고 간언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시드기야 왕은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구덩이에서 끌어내라고 합니다.

 

 

에벳멜렉은 왜 이러한 행동을 할까요?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예레미야는 악한 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에벳멜렉이 내시이고 구스인이긴 하지만 성이 무너지고 유다가 패망하는 것은 그에게도 불행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에벳멜렉은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는 선지자를 악한 자로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할 때 그는 그것을 악하다고 하면서 살려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말씀은 성령으로만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임하고 말씀을 알게 된 신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당연히 말씀 편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을 두고 ‘이것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분노하는 무리들 속에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인해 자기 악함을 알게 된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의 악함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믿는다면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의 악함을 안다면 세상이 처한 진짜 현실이 저주라는 것에 눈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신자입니다.

 

 

세상의 진짜 현실이 어떤가를 알았다면 그가 의지할 대상은 모든 죄를 덮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구출하기 위해 세상에 오시고 세상의 힘에 붙들려서 십자가에 죽으신 바로 그분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안일하게 세상을 보면서 평안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평안한 듯 보이는 세상이 실제는 멸망이라는 구덩이에 던져져 있음을 알기에 그 멸망을 선포하는 말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는 말에 분노하는 것은 유다의 악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악함을 보지 못한 어리석임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도 말씀이 아닌 것으로 배척하고 분노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를 참된 진리로, 생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악함을 알게 됨으로 가능합니다. 저주에 갇혀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기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이 옳았다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함께 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세상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저주를 모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존귀함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유다처럼 듣기에 좋은 말이면 받아들이고 거북하면 배척할 뿐입니다.

 

 

14절에 보면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불러 한 가지 일을 물을 것이니 한 마디도 숨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예레미야가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15절)고 말하자 결코 죽이지 않겠다고 시드기야가 맹세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관리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왕에게 전합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왕은 성이 무너지고 자신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면 이미 포로 되어 끌려온 유다 백성들에게 조롱 받을 것이라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 “너는 이 말을 어느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24절)고 합니다. 예레미야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문제에 대한 염려로 가득할 뿐입니다.

 

 

조롱 받을 것을 염려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멸망의 존재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사랑이 저주의 자식이라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되는 것이 믿음이며 회개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의 이름은 없습니다. 저주 받을 자의 이름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높이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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