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9.08 10:03

(90강) 멸망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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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9:1-10http://onlycross.net/videos/jer/jer-390110.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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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4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설교>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됩니다. 시드기야 왕은 아라바로 도망쳤지만 추격한 군대에 의해 결국 붙들려서 바벨론 왕에게 끌려와 심문을 당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유다의 모든 귀족까지 죽입니다.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을 결박합니다. 왕궁과 백성들의 집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도 헐어버립니다. 또한 항복한 자와 그 외 남은 백성들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김으로 유다는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이방인에 의해서 그토록 철저하게 무너지게 하신 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해 그 같은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말씀답게 드러나는 것이 유다의 역할이지만 유다는 그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유다를 부수고 새롭게 세우셔서 담고 있는 말씀이 드러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소경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유다의 형편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실상은 유다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서지고 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정확히 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들에게 주어진 말씀의 의미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란 말씀을 나타내고 증거해야 할 도구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본분임을 잊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이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 된 자의 길입니다. 말씀을 나타내는 도구라는 것은 신자는 자신을 나타내는 길로 가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나타내는 일에 마음을 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자기 일을 도우시는 것으로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 된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정작 말씀의 의미는 보지 못하는 소경의 상태로 존재할 뿐입니다.

 

 

시드기야의 처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아들들이 죽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고 눈이 뽑히고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까?

 

 

이러한 시드기야의 처지는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가 겪는 처지는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만 발견했다면 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것이고 멸망에서도 벗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불쌍한 인간이 누구겠습니까? 가난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말씀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굳이 이방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실상은 말씀을 알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유다가 망하는 와중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가 에벳멜렉입니다. 에벳멜렉은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갇혔을 때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가둔 것은 악한 일이라고 권함으로 예레미야를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에벳멜렉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고 반드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고 에벳멜렉은 살리려고 했습니다. 성품이 포악해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몰랐던 것이 이유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가 모르는가의 차이가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고 살리는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에벳멜렉은 유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38,39장에서 잠깐 등장한 것이 전부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 뭔가 일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 그가 유다의 멸망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봉사한 사람이라면 성전에 가득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하나님이 구원하겠다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에벳멜렉을 제외하고 모든 유다 사람이 지옥 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에벳멜렉을 세워서 심판에서 구원 받는 자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던 유다 사람들을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도구가 에벳멜렉입니다.

 

 

18절에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고 말합니다.

 

 

에벳멜렉의 구원의 근거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는 말씀으로 드러납니다. 믿었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었다고 자부했던 유다가 멸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다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믿음이 과연 유다의 믿음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르지 않다면 하나님이 믿음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에벳멜렉의 믿음은 예레미야를 살리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에벳멜렉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유다 사람처럼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을 부당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에벳멜렉의 믿음은 말씀에 대한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이 말씀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신을 심판이 당연한 죄인으로 여겼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의미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임을 직시할 때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스스로 구원받기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을 의가 아닌 죄로 여기게 됩니다.

 

 

유다는 죽음의 자리에 있는 인간의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멸망은 죽음이라는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실상을 보게 하십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죽음의 실상을 보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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